들은 이야기라 언제였던가는 잘 모르겠다. 원주에서 어떤 세미나가 있었고 네 살 많은 나의 누나 또한 발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세미나를 마치고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이○ 교수 발표 밖에 들을 게 없는 것 같다며 앞으로 해마다 참석했으면 한다고 했었단다. 준비도 물론 열심으로 했겠지만 통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던 까닭이리라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그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그는 너무도 많이 늙었고 그의 삶과 이름은 몇몇 사건들로 하여 많이 훼손되었다. 하지만 그 훼손이라는 것은 생각하기 나름, 흩어진 것은 그의 이름일 뿐이고 어떤 부분들에 있어 나는 여전히 그의 지지자이다. 이도 저도 중간도 아닌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도 묘한 한 말씀 남기며 창작에의 열정을 피력한 ‘에너지 선생’을 생각해도 그렇다.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 해도 후회없는 그런 마음이라고나 할까.
스위프트에 모자라지 않는 풍자가로서의 놀라웠던 작품들이나 몹시 여린 감상으로 채워졌던 그의 시편들은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 빛을 발했고 그리고 사그라들었다. 좀 많이 오버한 적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빛의 강렬함과 눈부심을 기억하기에 지금의 희미함 또한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오래 전 동생이 내게 준 그의 시집을 기억한다. 한시절 꽤 ‘적극적인 참여자’였던 동생이 두 권을 사서 하나 내게 줬던 것, 동생이 갖고 있던 책은 후에 누나에게 전해졌다. 기억나는 글 하나 없는데 그 시집의 제목은 그리움으로 나를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