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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시대

역사를 하노라고 땅을 판 것도 아닌데 이 무슨 변고인지 놀라운 작품들과 작자들이 부지기수로 발굴되고 있다. 역사는 이 대단한 발견의 시대를 시인 시대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상하고 우스운 시대, 언제 몰래몰래 열심히들 하셔서 단에 오른 것인지 영화배우 교수님도 시인, 연극배우도 시인, 인간문화재 하다가도 시인, 젊은 배우 엉덩이를 툭툭치며 연애를 꿈꾼다던 연출가께서는 오래전부터 시인에다 또 시인, 다들 하나같이 하루 아침에 시인이시다. 돈으로 시인하신 분들이 차라리 깔끔해 보이는 시대, 장미여관의 주인공이 진정 가슴 아픈 시대, 온갖 난삽이 넘쳐나는 찰스 부코스키가 참으로 멋져 보이는 시대다. 그런데 나보다도 부끄럼 많이 타는 오늘날의 이분들이 어찌하여 전업작가인양 시인하시게 되었는지 예술과 외설이 이토록 환상적으로 만날 줄을 나는 몰랐다. 언제나 푸른 네 빛 변하지 않는 그 빛의 사진작가도 시인, 내 몸을 내가 어찌 못한다는 명언을 남기신 정의의 신부님도 시인, 소설가도 시인, 시인들도 시인이긴 한데 이들 문인들은 좀 복잡하다. 어떤 시인은 시인도 하고 부인도 하고,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기도 하고, 결단코 시인할 수 없다고도 한다. 넌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오묘하게 넘나드는 환상적인 ‘옆편’ 소설도 가끔은 구사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깃발의 빛깔인지 이런 일에 피를 토하곤 하던 피켓들은 시인하시는 그분들의 경악스런 작품에 관해 웃을까 울을까 망설이며 미적대기만 한다) 나는 시인할 것도 없고 시인이라 할 뭣도 없고 그저 핏대 좀 세워 힘을 주고 이런 시……로 시작하는 단어들과 시에 관해서만 평생토록 아주 조금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지만 자세히 봐도 예쁘지 않고 오래 보아도 결코 사랑스럽지 않은 시인의 시대, 너라는 이름의 나도 그렇다. 그리고 이제야말로 저리게 누군가의 가슴을 때릴 순간의 꽃, 하지만 이런 시……는 이제 그만 찢어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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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문장은 이상, 이윤택, 나태주, 고은을 인용하거나 변용하였다.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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