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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만……

온종일 비가 왔었다. 돌아오는 길, 길모퉁이 부식가게가 열려있지 않기를 바랬다. 하지만 나는 겉옷 주머니에 천원짜리 몇장을 넣어두고 밖으로 나섰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부식가게에 들러는 날이 오늘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생활력 강해 보이는 아주머니지만 이제는 부식가게라는 것이 추억 속의 거리에나 있는 법이어서 장사가 잘 되지는 않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엄동설한의 좁은 골목에서 김장일을 대신하기도 하고 야채 트럭을 운전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뽀얗게 김이 서린 창 안쪽에서 대학생쯤 되어보이는 아들과 마주 앉아 서로서로 기운을 북돋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억척같은 몸과 마음도 할 게 있어야 할 수 있는 법, 손님이 없고 일이 없을 때 아주머니는 좁은 가게 안에서 야채를 다듬으며 텔레비젼을 보고 있곤 하지만 지나가는 객일 뿐인 나는 자신의 발걸음 소리로 해서 마주치는 눈길이 조금 무섭다. 무서워서 무서운 게 아니라는 건 한산한 시장의 어둑한 길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어떤 느낌이다. 여전히 비는 그대로 쏟아지는데 부식가게 앞에는 비닐까지 드리운 채 불이 켜져 있었고 어묵 냄비 위로 하얀 김이 솟아 오르고 있었다. 어묵 달라고 부르는 것은 나지만  갯수를 정하는 것은 내 권리가 아니다. 대개는 3천원어치만 가져가라고 하고 그러면 나는 3천원을 드린다. 가끔은 눈치껏 1, 2천원 더 쓰기도 하는데 그때는 떨이를 하기 위함이고 어떤 때는 내가 하나 남은 어묵을 덤으로 받기도 한다. 주머니에 넣어둔 돈은 까마득히 잊고 가방에서 3천원 꺼내느라 잠깐 사이 비도 좀 맞았다. 따뜻한 국물이 생각난 것도 아니고, 달리 바라는 것은 없었다. 어묵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속절없이 타고 있는 커다란 냄비 아래 가스불을 어느 하루 저녁 잠깐이라도 끄고 싶었을 뿐이다.

 

/2018. 1. 17.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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