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들을 길이라곤 없었던 것 같은데 처음부터 이 노래는 이상하게 귀에 익은 느낌이었다. 라디오가 거의 유일한 채널이었던 시대였지만 그래서 귀에 익은 것이 아니라 기시감, 아니 ‘기청감(déjà entendu)’을 불러일으켰고 묘하게도 그것은 돌아갈 길 없는 시간 또는 장소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했다.
오케스트레이션이 들어간 <let it be> 버전도 좋았지만 ‘세계 야생동물 기금’에의 기부를 위해 만들어진 앨범에 수록된 버전을 더 자주 듣곤 했었다. 새 소리와 더불어 스피커 채널을 옮겨가며 들리는 파도 소리인지 날개짓인지(아마도 새들의 날개짓인듯) 조금 조악하게 들리는 효과음이 나는 오히려 좋았다. 이펙트가 들어간 일렉트릭 기타와 시타, 탐부라……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는 노래 가운데 하나이고 가사는 한편의 환상적인 시(endless rain into a paper cup!) 같았다.
/beatles ballads
‘야생동물 기금’ 버전은 beatles ballads라는 제목의 컴필레이션 앨범(lp로 갖고 있는 이 앨범 재킷을 생각하니 아련한 느낌이 들어 한번 찾아봤다)에도 수록되어 있었고 <past masters>에도 들어 있다. 어릴 때도 그리 추측했었지만 예상대로 ‘기금 버전’은 원래의 녹음을 속도를 올려 조를 바꾼 것이었다. 그리고 이 노래의 제목은 여전히 미완인 채 손을 놓고 있는 내 어떤 이야기의 제목에도 변용되어 포함되어 있다.
몹시도 캄캄했던 지난 밤,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가 희망일지 신념일지 고통일지 탄식일지 알지 못한 채 이 노래 듣던 시절이 저리도록 그리워졌다. 받을 길도 전할 길도 없는 숱한 사연을 싣고 우주의 저 끝으로부터 이 노래가 다시 내게로 왔다.
/no one’s gonna change our world
(world wildlife fund를 위해 across the universe가 처음으로 발표되었던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