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1987년 12월이었을 것이다. 한 시간은 족히 걸어야 민가를 만날 수 있는 깊은 산골 호젓한 숲속을 홀로 거닐었다. 담배 연기 가득했던 가슴은 차가운 공기 속으로 풀려났고 온통 눈덮인 개울가 바위 아래 고드름을 떼어먹으며 즐거웠다. 얕은 숲 사이 어딘가 잠깐의 봄날인양 눈도 쌓이지 않은 공터가 나는 아까웠다. 꽃과 같은 삶과 꽃일 수 없는 삶과의 갈등 사잇길에 쩔룩거리며+ 여기 두 사람이 있었으면 싶었다. 겨울산 추위 속에 몸 숨기고 몸 드러내었으면 싶었다. 아득한 시간 너머 돌아온 곳, 12월과 겨울에 관한 혹독한 시를 읽고 싶었다. 내 마음 같은 시를 찾아 한 시간은 족히 헤매었으나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글자들은 두서없이 흩어져버렸다. 헒과 菌과 悲와 哀와 愛 그 무엇도 엮지 못한 채 흘려보낸 창공++ 아득히 저 아래 인적 끊긴 얕은 숲을 다시 거닐고 있다. 봄날처럼 따사로운 자리 대신 눈빛 물든 공터가 나는 또 아까웠다. 속 트이는 맑은 공기도 수정 고드름도 없는 외길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는 공터, 둘이 아니어도 몸 숨긴 채 잠시 아주 아주 잠시 누워보고 싶었다. 2017년 12월이었다.
+
한하운
++
네 헒과 균과 비(悲)와 애(哀)와 애(愛)를 엮어
뗏목처럼 창공으로 흘러 보고파진다/한하운
/2017. 1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