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2000년대의 중반이었던 것은 분명히 기억한다. 나는 르귄의 단편집이 나온 것을 보고 곧장 구입했다. 아마도 세부 쯤 구해서 하나는 선물을 했고, 잘 펼쳐지지 않는 작은 책이 불편했던 나는 책을 잘라 링으로 묶었다.(선물도 그렇게 했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어딘가에 원본 그대로의 책이 또 하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여전히 다 읽지 못했다. 나처럼 책읽기에 서툴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그녀의 책을 읽는데 뭔지 모를 어려움이 있다.
보르헤스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고 해도 한줄 한줄 새겨 읽을 수 있었지만 르귄의 경우엔 그렇지 못했다. 허사처럼 보이는 묘사가 많은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한다면 스스로도 조금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멜라스에 대해 가졌던 나의 오래된 어떤 거부감이 희미하게나마 여전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그리고 좀 비루한 변명 같은 그 결과, 내가 기억하는 바람의 열두 방향은 여기저기 구멍난 스폰지 같은 형상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십수년에 걸쳐 피셔킹을 보았고 다른 몇몇 영화와 책에 대해서도 (이해를 구하기는 좀 곤란한) 비슷한 과정들을 경험했다.
르귄에서도 그럴지는 십여년의 시간을 보낸 지금도 잘 알 수 없지만 그 열두 방향 가운데 하나였던 <파리의 사월>을 여전히 좋아한다. 고독한 어떤 마법사가 꿈같은 마법으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친구를 만들고, 애인을 만나고, 친구의 애인까지 엮어서 파리의 사월을 즐거이 거니는 이야기다. 부러운 심정으로 그 이야기를 처음 보았던 때가 언제인지는 잘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르귄의 단편집보다는 한참 이전이었다.
나는 이 책의 서두에 있는 슈롭셔의 젊은이를 옛 홈페이지에 올린 적이 있다. 그것도 내가 아닌 다른 분이 대신해서 올려주는 형식으로. 그 시가 지닌 문학적 의미에 관해서 아는 바는 별로 없지만 내 마음 같았던 시간을 나는 알고 있다.
/2017. 1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