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을 따라 흥얼거리다
문득 밤하늘을 바라 보았지 별 하나 찾기 힘든 그곳,
그리운 얼굴을 떠올리기는 어려운 일이었지
/창백한 푸른 점
어릴 적에 본 학원사의 <코스모스>는 우주에 대한 상상의 보고였다. 지름 10만 광년의 은하에 수많은 별이 모여 있는 도판을 보면서 무한에 관한 수많은 꿈을 꾸던 시절이었다. 교양서적이라면 교양서적일 뿐이겠지만 처음 읽었을 때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 책에는 은하와 행성에 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무라이의 투구를 닮은 헤이케 바다의 게와 진화론적 선택을 드라마틱하게 연결시켰고, 불타버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대한 묘사는 하염없는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다. <코스모스>를 떠올리면 이오의 활화산에서 퀘이저까지, 에라스토테네스에서 인디언들의 문명세계와의 조우에 관한 기록, 뉴턴이 그려낸 바닷가의 소년의 이야기 등이 순서도 없이 머리속에 펼쳐지곤 한다. 하지만 <코스모스>에서 단 하나의 문장을 뽑는다면 나는 그 책의 제일 앞에 있는 짧은 헌정사를 떠올리곤 한다. 어쩌면 대단할 것도 심오한 것도 없는 연애편지 같은 조금 감상적인 문장일 뿐이지만 그런 마음이 일어날 때 나이브해지고 유치해지는 것은 유치한 일이 아니다. 그런 유치함을 다시 경험할 수 없음이 서글픈 일일 뿐. 내 낡고 오래된 코스모스의 처음에 실린 글은 다음과 같다;
for ann druyan:
in the vastness of space and the immensity of time,
it is my joy to share
a planet and an epoch with annie.
/carl sa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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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푸른 점은 칼 세이건이 쓴 또다른 책의 제목이지만
내게 있어 책이 아닌, 시의 제목도 아닌 다른 무언가의 이름이기도 했다.
I feel the same as sagan says
불가해를 훌쩍 뛰어넘어
짧은 몇 글자로 만들어진 ‘코스모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