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에 한 젊은이 있어
나이 스물에 마음은 벌써 늙어 버렸네
이하의 시는 이렇게 시작했다. 젊어서도 젊은 적이 없었던 나는 그 두 줄에서 벌써 ‘진상’을 보았다. “진상에게”의 진상은 이하와 비슷한 연배의 품격있는 청년이었던 것 같지만 그 진상이 허접한 어떤 이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 보니 자꾸 엉뚱한 것만 더 눈에 들어온다. 진상은 허상이 되고 거기에서야 진상이 보인답시고 ‘겉보기에 허름하고 질이 나쁜 물건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서의 ‘進上’이나 실제의 모습을 뜻하는 ‘眞相’이 나를 찔러대는 것이다.
곤궁하고 못난 인생
해 질 녘이면 애오라지 술잔만 기울이네
지금 길이 이미 막혔는데
백발까지 기다려 본들 무엇하리
쓸쓸하구나, 진상이여!
이 구절에 와서는 이미 반백(!)을 넘어 흰머리 가득한 이로서 덧붙일 말도 없는 진상 그 자체다. 한치라도 괜찮은 부분이 있다면 그건 어떤 이의 것이 아니고 “노비 같은 기색과 태도로 다만 먼지 털고 비질만 할 뿐”, “옛 검(劍) 한번 크게 울어 볼” 일도 없다는 끝자락의 몇몇 대목은 나라는 進上에게 결단코 어울리는 것이었다. 오직 그의 탄식만이 내게 합당하여 그의 시처럼 녹여낼 길 없으니 낡아도 홀로 벼려진 검이 아닌 ‘le fusil rouillé(녹슨 총+)’에게는 울음도 없다. “녹슨 총보다 더 멋진 것은 없어요, 그리고 그건 이제 결코 소용없을 거예요”라던 앙리꼬 마시아스의 노래가 가을 바람처럼 이하의 마지막 말처럼 스산하게 들려올 뿐.
장안에 한 젊은이 있어
나이 스물에 마음은 벌써 늙어 버렸네
능가경은 책상머리에 쌓아 두고
초사도 손에서 놓지 못하네
곤궁하고 못난 인생
해 질 녘이면 애오라지 술잔만 기울이네
지금 길이 이미 막혔는데
백발까지 기다려 본들 무엇하리
쓸쓸하구나, 진상(陳述聖)이여!
베옷 입고 김매며 제사의 예를 익히고
오묘한 요순의 글을 배웠거늘
사람들은 낡은 문장이라 나무라네
사립문엔 수레바퀴 자국 얼어붙어 있고
해 기울면 느릅나무 그림자만 앙상한데
이 황혼에 그대가 날 찾아왔으니
곧은 절개 지키려다 젊음이 주름지겠네
오천 길 태화산처럼
땅을 가르고 우뚝 솟은 그대
주변에 겨눌 만한 것 하나 없이
단번에 치솟아 견우성과 북두칠성을 찌르거늘
벼슬아치들이 그대를 말하지 않는다 해도
어찌 내 입까지 막을 수 있으랴
나도 태화산 같은 그대를 본받아
책상다리 하고 앉아 한낮을 바라보네
서리 맞으면 잡목 되고 말지만
때를 만나면 봄버들 되는 것을,
예절은 내게서 멀어져만 가고
초췌하기가 비루먹은 개와 같네
눈보라 치는 재단을 지키면서
검은 끈에 관인(官印)을 차고 있다 하나
노비 같은 기색과 태도로
다만 먼지 털고 비질만 할 뿐이네
하늘의 눈은 언제 열려
옛 검(劍) 한번 크게 울어 볼 것인가
진상에게 드림 / 이하
/2017. 10. 19.
+열여섯일 적에 <검지의 꿈>이란 제목으로 ‘녹슨 총’에 관해 쓴 적이 있다. 녹슨 총을 붙들고 운다던 나는 역시나 노인이었던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