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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를 쓴다는 꿈

적어도 수십년 전, 장터도 아닌 외갓집 앞 포장도 되지 않은 길 한켠에서 약장수가 판을 벌였다. 둘 다 한 자 정도 크기나 되었는가 모르겠다. 주인공은 그다지 멋져 보이지는 않았던 장난감 로봇과 몸서리쳐지도록 커다란 기생충을 담아 둔 유리병이었다. 시원찮은 말주변으로 약장수는 슬그머니 로봇 자랑을 했다. 어딘지 어설퍼 보이는 그 로봇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고 앞쪽의 나사 구멍 같은 홈으로 담배를 피울 수도 있다고 했다. 더 놀라운 것은 로봇 가슴의 사각형 부분에 텔레비젼이 장착되어 있어 로봇이 찍어온 아폴로 11호의 달착륙 장면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약간 미심쩍긴 했으나 로봇과 달과 환상이 한참 더 컸기에 나는 경악스런 회충약 선전까지 귀를 기울이며 지겨운 줄도 모른 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회충약은 잘 팔리지 않았고 내 가슴 어딘가도 아픈 것만 같았다. 파장이 되도록 로봇은 끝내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그 새카만 사각형은 한번도 켜진 적 없이 새카맣게 끝이 났다. 그 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 천불 소득 백억불 수출로 선진국이 된다는 꿈도 그랬다. 세기가 바뀌도록 내가 시를 쓴다는 꿈도 그랬다. 적어도 수십년, 그냥 그랬는데 속에 천불만 났을 뿐 언제적 파장인데 아직도 그 새카만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약장수는 사라졌고 약장수는 따로 있고 나는 어딘가 틀림없이 아픈 것만 같다.

 

 

/2016. 8. 24.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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