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tatinha(Little Potato)는 ‘쌈바의 시인’이라 불리우는 브라질의 쌈비스따다. 하지만 그는 대개의 쌈비스따처럼 기쁘거나 슬퍼거나 활력이 넘쳐나는 리듬 대신 어딘지 내향적이거나 심지어 자기성찰적인 느낌을 주는 느리고 정적인 쌈바를 택했다. 제목 또한 기존 음악들과는 많이 다른 성향을 보여주며, 그의 쌈바엔 현악기의 사용도 자연스럽고 느릿한 노래들이 더 많다. 그의 모습을 보면 젊은 날에도 새하얗던 머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사실 내가 이야기 하고픈 것은 그의 음악과는 좀 다른 나 자신의 오래된 기억에 관한 것이다.
바따찌야의 음악과 하얀 머리칼은 이상하게도 내 중학교 시절의 반 친구 한명을 생각나게 한다. 나와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고 별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는 친구였다. 말수가 별로 없었던 그는 수업시간에 가끔 일기장 같은 공책을 펴서 혼자 읽곤 했다. 내 앞자리 어딘가 있었기에 나는 그 공책의 글자들이 친구의 등 너머로 조금씩 보이기도 했는데 틀림없는 여학생의 글씨였다. 그것도 여학생들의 흔한 글씨체로 씌어진 노트에는 센티멘탈한 단어들이 많이 보였던 것 같다. 여자 친구는 상상도 못했던 때라(나는 스무세살이 되도록……) 그 노트의 사연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음에도 나는 그 친구가 누군지 모를 여학생의 글을 읽는 자체가 너무 부럽고 질투가 났고 그리고 궁금했다.
<Toalha da Saudade>, 1976.
주변의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궁금증으로 그 노트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이전에도 그 이후 지금까지도 그런 비슷한 짓은 한 적이 없었는데 나는 쉬는 시간에 그 친구 없는 틈을 타서 노트의 한 페이지를 찢어서 빼돌리고야 말았다. 특별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사춘기의 감상이 묻어나는 독백이었고 ‘포도鋪道'(포장도로)라는 단어와 그 필체까지도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뭔지 모르게 감상적이고 슬픈 독백 같은 것이었다. 수업이 시작되어 자리에 앉은 그 친구는 틀림없이 한 페이지가 찢겨나갔음을 알았을텐데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았고 당시에도 나는 큰 잘못을 했다는 생각을 했지만 돌이킬 수는 없었다. 사과를 하지도 못했다. 정말 오래전의 일이지만 그날을 떠올리면 나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함께 느끼곤 한다.
그 친구의 뒷머리는 새치가 많아 절반쯤 하얀 빛깔이었고 바따찌야의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왜 그런지 그렇게 가깝지도 않았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친구가 먼저 생각난다. 그리고 내가 저지른 일을 부끄러워 하며 전할 길 없는 사과를 어떤 문장도 없이 마음에 새기곤 한다. Imitação da Vida(Imitation of Life), 어떤 가짜 인생이 그렇게 철없이 구경하고 싶어했던 세계의 씁쓸함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 가짜 인생이 여전히 쳇바퀴를 돌리고 있음에 버거워 하면서.
‘Imitação’은 마리아 베따냐가 어느 오래된 라이브에서 모음곡 형식으로 더할 수 없이 멋지게 노래했던 곡이며, 질베르뚜 질이 바따찌야의 컴필레이션 앨범에서 다소곳이 노래했던 바따찌야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1969년에서 1976년 사이 3장의 정규 앨범을 내었고, 이후 2장의 컴필레이션 앨범만을 남긴 바따찌야는 시원하거나 달짝지근한 보싸노바에 가려진 브라질 음악의 찢겨나간 한 페이지일지도 모른다.
/Direito de Sambar
/2017. 8. 25. , 2023. 4. 26.,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