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공간에 여유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늦은 시간에 오면 부득불 중평행주차를 하고선 폐가 될까 염려하여 새벽에 나와 빈 자리를 찾아 차를 옮기곤 했다. 그럼에도 장애인용 주차공간은 대부분이 남는 자리여서 밤늦게 들어온 차들은 통상적으로 그곳에 주차하곤 했다. 장애인용 주차표식을 단 차량들이 주차하지 못하는 일은 없었지만 나는 단 한번도, 어떤 경우에도 장애인용 주차공간에 차를 세운 적은 없었다.
그래도 자리를 괜찮은 자리를 찾아 주차를 하는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즐겨 주차하는 자리는 장애인용 자리 옆자리다. 그리고 그곳 주차장의 한 모퉁이는 양 변이 장애인용 주차자리인데다 모서리는 공간이 꽤 넓어서 차를 대고도 남을 정도였고 통행에 불편을 주는 자리도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곳도 자주 주차를 하곤 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자리에 차를 대는 것을 ‘곡각주차’라고들 한다. 양 변의 끝자리(장애인용 자리)에 차를 대는 사람들이 조금씩만 공간을 넓혀주면 두 변의 모서리 자리는 차를 대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토요일에 그 자리가 비어서 나는 그곳에 주차를 했다. 바로 옆으로 붙은 장애인용 자리 하나는 장애인 아닌 분이 주차를 했고 직각의 다른 변의 장애인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런데 일요일에 밖에 나와 보니 남은 한 자리에 장애인용 표식이 붙은 검은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일반인들이 가장 무난하게 선망하는 모 자동차 회사의 조금 큰 중형자동차였다. 아마도 출고한지 얼마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분이 굳이 (상당히 넓은 장애인용 주차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내 차 옆으로 잔뜩 붙인데다 주차정지 턱까지 후진도 하지 않은 채 주차를 한 바람에 모서리의 내 차는 양쪽 변의 차 가운데 하나가 빠지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월요일 아침에도 그런 상태라면 좀 난감할 뻔 했으나 다행이도 비장애인인 분이 아침 일찍 차를 빼서 나가는 바람에 내 차가 나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나는 가급적 그 자리에 주차를 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그 장애인 표식이 붙은 검은 자동차는 늘 비슷한 방식으로 주차를 했고 결국 한번은 곤란한 상황을 목격하였다. 꼭 내 경우처럼 어떤 분이 모서리에 차를 댔는데, 역시나 그 검은 자동차는 모서리 쪽으로 붙인 채(그 검은 차의 옆자리도 장애인용 주차공간이어서 반대쪽은 필요 이상으로 텅 빈 공간이 생겨 있었다) 주차를 해서 모서리의 차가 빠져나올 수 없게 되버린 것이다. 나는 모서리의 차주가 어떻게 문제를 풀지 조금 궁금하였고, 직각으로 두 변에 설치된 장애인 주차공간에 세워진 두 대의 차 ㅡ 한 대는 장애인 표식이 붙은 검은 자동차, 다른 한 대는 비장애인의 ‘불법’ 주차, 차주들은 어떻게 반응할지쓸데없이 염려가 되기도 했다. 나 같으면 또 그 난감한 상태를 어떻게 해야 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하면서. 모서리에 주차했던 차주는 출근하려고 나와서 보니 차가 나올 수 없는 상황인 것을 보고선 양쪽 옆의 차들을 번갈아 살펴보며 한참을 망설이는가 싶더니 결국은 포기를 하였는지 그냥 걸어가는 것이었다.(아마도 그 분은 택시를 타고 갔으리라 생각된다.)
이후에도 가끔은 그런 아슬아슬한 상황들이 몇 번 있긴 했으나 다행이 차가 못나가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있었는데 내가 알지 못했을지도. 게다가 그 검은 자동차의 차주는 지상보다는 지하주차장을 선호하는 듯하여, 항상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한두 달 쯤 뒤, 지하주자창 보수공사가 몇주간 계속되었다. 그러다보니 지상주차장으로 차가 몰려서 그야말로 ‘주차장’이 되어서 차 한번 나가려면 몇 대의 차가 새벽부터 움직여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내 경우도 평행주차하고 전화번호를 붙여놨다가 아침 여섯시에 화난 젊은 여성의 전화를 받은 적도 있었다.(그 여자분이 언성을 높인 이유를 생각하면 어이가 없었지만 미군 자동차의 부속품들에 끼워맞춘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이름이 최무성 형제가 만든 상표명 ‘시-바 ㄹ’의 ‘시발자동차’라는 것,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 난리통의 와중에도 검은 자동차는 여전히 모서리쪽으로 붙인 채 여유롭게 주차를 하여 차 한 대 주차할 수 없는 공간을 아예 막아버리곤 했다. 그다지 넓지는 않은 지상주차장인지라 자동차 세대 정도가 평행주차 해버리면 밀어서 해결할 수도 없는데 꼭 그런 곤란한 상황이 되도록 말이다. 하지만 그 자동차가 장애인 표식을 달고 장애인 자리에 주차를 했고, 모서리 주차는 아주 엄밀히 말하자면 (그게 법적인 구속력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파트 규정상 맞는 일은 아니기에 그 검은 차가 잘못한 것은 없다. 하지만 몇주 동안 심각한 주차난을 겪는 동안 그 차가 그런 것을 전혀 고려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몇 번의 작은 사건을 통해 예상할 수는 있었다. 그로 인해 꽤 많은 사람들이 불편했음에 관해서도.
그리고 드디어 어느 날 그 차주를 볼 수 있었다. 아마도 그들 부부는 어딘가 스포츠센터나 수영장을 다녀오는 것 같았다. 이미 모서리에 주차된 차를 보고선 주차를 했는데 내려서는 옆의 차를 훌끔훌끔 보더니 아내 쪽에서 폰으로 사진을 찍고선 가는 것이었다. 아마도 차가 나가다 긁기라도 하면 ‘범인잡기’에 대비하는 모습인 듯 싶었다. 주차하고 들어가면서 보니 그 검은 차는 주차선의 정중앙으로 정확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운전석에서 보아가며 조금만 오른쪽으로 주차했어도 사진 찍어가면서까지 신경쓸 일은 없었을 것도 같았지만 그분들 속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튼 검은 차가 등장하고나서부터 나는 아주 확실한 상황이 아닌 다음에야 그 곡각지에는 절대 주차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언젠가 딱 한번, 장애인용 자리에 일반인들이 주차하는지 조사하러 온 분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분은 매우 당당하게 장애인 자리에 주차를 한 후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분의 차에 장애인 표식은 물론 없었고 그 시간에 장애인 자리에 주차된 자동차는 그 단속차량이 유일했다. 끝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자질구레하고 긴이야기는 비장애인의 그다지 크지 않은, 사실은 아주 작은 장애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면 내가 굳이 문장으로 쓰고 싶지는 않은 그 반대의 바램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주 소소한 駐車場哀史거나 그에 못지 않은 소소한 駐車障碍史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