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나는 ‘라 칼리푸사’가 술집 내지 클럽의 이름이거니 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것은 ‘la, california, usa’의 아나그램이었다.
마이클 프랭스의 antonio’s song은 달달하기만 하고 그 노래가 안또니우 까를루스 조빙의 음악을 잘 표현한 것인지에 대한 확신은 별로 없다. ‘프레부'(헤시피 축제의 쌈바/리듬) 같은 삶이 어떤 것인지도 잘 알지 못한다. 그가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와 더불어 ‘mpb’, 그러니까 ‘무지까 빠뿔라르 브라질레이라’로 불리우는 브라질 대중 음악의 수준을 한차원 높은 곳으로 이끌어간 ‘마이스뜨루’임에 틀림없지만 쌈바를 작곡하고 노래한 ‘쌈비스따’라고 부르기는 적절치 않은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그 노래의 한 대목에 끌리곤 했다.”내 희망의 대부분이 사라졌을 때 안토니오의 쌈바가 날 아마존으로 이끌었네(when most of my hope was gone antonio’s samba led me to the amazon)”라는 소절이다. 그리고 한때는 내게도 ‘안토니오’의 것이 아닌 ‘안토니오의 노래’가 있었다만 지금은 무엇이 남아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딘지 모를 ‘라 칼리푸사’를 배회하며 most of가 아니라 all of인 것처럼 느끼고, 고통이 잉태한 즐거움이란 ‘虛辭’라고 여기며 안토니오의 노래로부터 아득히 떨어져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