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아니면 2000년 쯤 만년필 하나 선물 받았다. ‘건필 기원’의 뜻을 담은 메모와 함께. 중학교 들어갈 때 만년필이라는 것을 처음 받아봤고 18세 쯤에는 어딘가 강제로 참석했던 자리에서 ‘아피스’ 만년필 같은 것 하나 얻었던가 모르겠다. 그 이후론 처음이었다.
꽤 오랜 기간 메일도 주고 받았고 그 사람이 근무하는 곳이 집과 가까웠기에 (이작자 여인숙에도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여전히) 몇 번 만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그 이상으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는 전혀 연락도 되질 않는다. 사람도 잊었고 만년필도 잊은 채 그것을 받은 때로부터 거의 17년 쯤의 시간이 흘렀나 보다.
지금도 달리 아는 것이 많지야 않지만 그땐 이 만년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저 감사히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미 컴퓨터에서 글쓰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던 내가 그걸 실제로 사용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몇해 전 잇달아 두 자루의 펠리칸 만년필을 구입하고서야 새삼스레 서랍 속에 묻혀 있던 펜을 다시 꺼내 써봤고, 올해 다시 찾아봤다. 자세히 살펴본 만년필은 독일 제품으로 elysee란 회사의 것이었다.
elysee 만년필에 대한 일반적인 평은 80년대 스타일의 가늘고 긴 바디에 부드러운 닙을 갖고 있다고 했고 가느다란 모양새와는 대조되는 m 규격의 닙에 대한 내 느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elysee는 사실은 für elise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고 불어에서 élysée는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낙원’의 의미)에 해당한다고 나올 뿐이다. 만년필을 만든 회사는 2000년대 초반 즈음에 생산을 중단하였고 그것을 선물해준 사람은 이제 기억 저편에 있다. 하지만 만년필은 여전히 내 손안에 있다.
17년 전의 기원은 일찌감치 효력을 상실했을지 모르지만 만년필은 여전히 새것인양 반짝거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거기 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물건은 때로 사람보다 오래 간다던 어떤 이의 씁쓸한 지적을 슬쩍 잊은 척 하곤 한다. 하지만 <유년기의 끝>에서 홀로 남겨진 ‘최후의 인간’처럼 그 만년필이 지금까지 내게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무엇인가를 ‘責책’하게 하거나 ‘勵려’하게 하곤 한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낸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elysee 만년필을 바라보는 심정은 그런 것이다.
/2017.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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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이 비슷해서일까. 그런데 이 만년필 메이커 이름을 보면
자꾸 톰 제의 어떤 노래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