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그리던 신춘문예의 꿈, 메이저신문에 평론 당선으로 멋진 출발을 했던 그는 글쓰는 이에게 흔치 않은 숱한 풍파를 겪기도 했으나 변함없는 붙임성에 타고난 수완으로 다른 일을 하면서 여전히 잘 나가고 있다고 들었지요.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잘 그려지지 않지만 그가 지금 시를 읽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또다른 한 친구는 인물도 참 멋졌습니다. 첫만남에서부터 내가 어설프게만 보였던 그 친구, 이상하게도 뒤늦게 내게 과분한 관심을 보였었지요. 나는 주제넘는 무신경으로 그를 대했지만요. 그는 오래도록 시를 썼지만 나는 그의 시에 관해 잘 알지는 못하지요. 나는 가끔 그가 전공을 살려 평론이나 미학 같은 분야로 나갔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긴 했지만요. 이제는 고향이 자신의 마당이 되었는데 그의 얼굴에서 읽히는 괴로움이 무엇인지 나는 잘 알 수 없습니다. 프로필을 보니 몇해 전에도 시집을 내었다고 나와 있긴 하지만 그가 지금도 시를 쓰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중학교 다닐 적 백일장에서 내가 동시 같은 글로 차상을 받았을 때 바다에 관한 시를 쓰서 장원했던 친구, 그 친구랑도 그럭저럭 잘 지냈는데 너무 어려서였던지 시 이야기를 한 기억은 정말 없네요. 그에게 시는 묻혀버린 추억일지 아니면 눈으로 속으로 여전한 시를 쓰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요.
대학교 시절 시 쓰는 써클에서 만났던 선배, 낮술 먹고 학교 앞 벤치에서 <명태>를 부르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비슷한 시기에 활자화된 시로 다시 만났던 가난했던 그 선배, 언젠가는 전세 문제로 걱정을 해서 돈을 좀 빌려드렸었지요. 이후로 명절마다 부산 내려오면 한번씩 얼굴 보곤 했는데 조금씩이라도 갚아주면 안될까 하고 조심스레 말을 걸었더니 그 이후로 연락이 끊어졌네요. 다른 사정이 있었더라도 괜찮았을텐데 말입니다. 언젠가 누군가랑 결혼했다는 풍문도 듣긴 했지만 그 선배, 지금도 외로운 밤을 마른 명태처럼 곱씹고 있을지요.
나로 말하자면 이것저것 하릴없이 끄적이기는 했지요. 초등학교 때의 동시부터 이야기하자면 햇수가 부끄러울 정도이건만 나날이 쓰기는 어렵고 의욕도 없지요. 실없는 상념에 의미없는 글자들을 너무 쏟아버린 듯, 이제는 아끼고 또 아낀다고 하지만 감춰둔 비단주머니 속에 남겨둔 사연은 아무 것도 없지요. 오죽하면 이하 생각하며 스완송 같은 시를 쓰기까지 했을까요. 지금도 매일 생각하고 끄적이긴 하지요. 하지만 나는 그가 시를 쓰고 있는지 정말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그의 눈동자 속에 그 어떤 시도 보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그의 눈동자가 반짝이며 보여줄 시가 없기 때문일 것도 같아요. 어쩌면 시를 쓰지 않는 당신이 그 잘난 누구보다도 더 많은 시를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에요.
/2017. 6.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