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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엽서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postcard에 비해 이름도 얼마나 분위기 있었던가 ㅡ 문자 메시지와 sns가 없던 옛 시절에는 엽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걸로 응모도 했고 모임도 알렸고 노래도 신청했고 안부도 물었다. 누가 본다고 한들 그대 아니면 의미없노라던 그 나이브한 방식은 또 얼마나 의미있는 것이었던가. 편지나 엽서나 오고 가는 속도는 다를 바가 없었지만 엽서에는 난데없는 청춘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어쩐지 보다 명확하고 빠르게 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우표 붙여 보내야 하는 알록달록한 그림엽서 말고 관제엽서라는 것이 있었다. 군관민 합동작전의 시대, 등화관제의 시대, 신문과 tv에 덧칠되어진 관제라는 이름의 그림자는 지긋지긋하고 신물나는 것이었지만 엽서만은 우표도 붙일 필요 없는 관제가 단출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이제는 엽서라는 낭만적인 호칭에 합당한 체신을 지키고자 체신엽서로 이름을 바꾸었고 그 자리는 전혀 다른 모양새의 엽서들이 관제를 대신하여 사제가 관제를 생산하는 놀랍고도 멋진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거기 비하면 관제엽서는 장난이었고 비행기가 떨어지거나 말거나 본인이 무조건 제일순위였던 언론과 방송을 생각하노라면 방법론에 있어 그 옛날의 우격다짐은 순진하리만큼 저차원이었고 최악이었다. 오늘날의 최첨단 사제엽서도 응모를 하고 모임을 알리고 노래도 신청하고 안부도 묻는다. 하지만 눈에 불을 켜는 대신 폰에 불을 켜고 컴으로 불을 붙이면 아침 바람 찬바람에 철없이 울고가는 저 기러기 엽서 한 장 써 붙여서 가위 바위 보 하는 사이 어처구니없는 많은 거짓들이 사제폭탄처럼 터지기 시작한다. 그대 아니라 그 어느 누구라도 괜찮다며 지금도 여기저기, 온사방에서 폭죽처럼 즐거웁게 터지고 있다. 기구한 내 사연은 깨알같은 글씨로도 관제엽서를 이미 가득채웠으나 아무도 눈도 깜빡 하지 않는다.

무치

데.호따.무치

2 thoughts to “관제엽서”

  1. 엽서라는 말이 낯설게 되는군요.
    편지도 낯설어지게 될테고 모든것이 어디로 가게 되는지 낯설어져요.
    말조차도 낯설어서 가끔은 이말이 진짜 쓰는 말일까 다시 되뇌이기도 합니다.
    엽서를 보낸적도 별로 없기도 하지만 그냥 사라져가는거 같아서 그립네요.
    예전에 봉함엽서라는 시를 찾아본적이 있어서 순간 이 시가 생각났습니다.

    1. 관제엽서에 대해 무엇인가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거의 스무살 무렵이었고
      그때 생각했던 것은 정치적인 관점으로서 ‘관제’에 대한 비판이었죠.
      하지만 오늘날 관제가 있던 자리를 차지한 무엇인가는 보다 복잡하고 교묘한 정체성을 지녔기에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만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습니다.
      이로운 못 하나 박은 것이 없다던 봉함엽서는 청춘이 사랑할 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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