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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 껍데기나 불가사리나

지금, 소라가 두려워 하는 것은
그리운 바다의 물결 소리
그녀의 목에 걸려 까불대는
이 지겹고 끈질긴 껍데기
/소라 껍데기, 이창기

 

세권의 책, 하나의 복사본 가운데 어디였는지는 모르겠다.
자칫하면 <블루 벨벳> 속의 잔디밭이겠으나
꼭도의 시가 희미하니 들려오는 소라 껍데기를 나는 집어들었다.

한 손엔 불가사리, 한 손엔 소라 껍데기를 쥐고 그려보았다.
“까불대는 끈질긴 껍데기”였으면 좋겠는데
목에 걸렸다가 어느 날 그냥저냥 넘어가버린 가시라면 몰라도 아무래도 아니었다.
나로 말하자면, 살아서나 죽어서나 도대체 용도를 찾을 수가 없는
말라비틀어진 불가사리일 뿐이었다.
하루거나 억겁이거나 사리 나올 리 없는 마음에는.

감히 내가 <소라 껍데기>를  썼다면

 

그녀의 목에 걸려 까불대는
이 지겹고 끈질긴 껍데기

 

로 충분했겠고, 제목은 윤형주의 “라라라”(‘까불대는’과 운이 맞어떨어지는 느낌이다)나
그 노래 가사속에 여럿 있을 것 같다.
그리고 佛語란 것이 까막눈인 내게는 말이 아니다(不語) 보니
알아도 알아먹지 못할 부처님 말씀처럼 깊어 보였다.

 

mon oreille est un coquillage
qui aime le bruit de la mer
/jean cocteau

 

이래저래 수준 한참 떨어지는(‘비슷한’이라고 썼다가 황송하여 황급히 고쳤다) ‘해산물 껍데기’로서
끝으로 한 수 읊어본다면,

 

더 이상 애타게 찾는 행상도 없이 나는
전복 껍데기처럼.

 

(“전복 껍데기 파이소~” 애절하게 불러대며 전복 껍질을 사가던 시절이 한때 있었다.)

 

 

+시험삼아 블로그와 연동을 시켜봤다. 여기 글을 올리면 블로그에도 동시에 포스트가 작성되는 방식이다. 최후의 백업이란 의미도 있고, 일부 카테고리에 한해서 사용해볼까 한다.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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