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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옷, 16년 전의 외투

사람 잃어버리고 물건만 오래 갖고 있는 것, 못난 일입니다. 어제 무얼 찾느라 어수선한 옷장 뒤지다 보니 저 안쪽에 오래도록 입지 않고 걸려만 있던 외투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랜만에 꺼내서 입어보고 시간을 따져보니 정확히 만 16년 된 옷이었습니다. 특별히 비싼 것도 아니었지요. 이국 땅에서 석달 겨울을 나면서 따뜻한 옷은 없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적당한 옷 하나 겨우 찾았지만 아무래도 가격이 옷보다 비싼 것 같아 살 수가 없어 오다가다 그냥 보기만 했더랬지요. 그러다 돌아오기 얼마 전 보니 겨울을 끝에 두고 가격이 반값이 되어 있었지요. 그래서 며칠 즐거이 그 옷 입었고 몇해 겨울 동안도 그랬었지요. 2001년 1월, 아이오와에서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13년된 가방, 16년째 내 팔에 채워져 있는 단주, 열 두 해는 족히 지난 것 같은 시계 ― 사람 잃어버리고 물건 오래 쓴다고 자랑하는 것, 부끄러운 일입니다. 말이 좋아 잃어버린 것이고 실은 읽고 싶지 않은 페이지인양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한줄인양 넘겨버리고 덮어버리고 찢어버렸던 것들이지요. 하지만 그 옷을 입었던 시절이 많이 그립습니다. 그때도 그리웠던 사람은 그 시간보다 더 그립습니다. 그래서 자주 입지도 않았고 누구 주거나 버리지도 못했습니다. 시집올 때 가져왔다던 양단 몇마름처럼 만져보고 쳐다보고 둘러만 보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지요. 오늘 조금은 시대착오적인 그 옷을 입고 나왔습니다. 남극 정복의 꿈인양 우스꽝스레 부풀어오른 깃털도 아니고 극한 상황에나 어울릴 첨단의 보온소재도 아닌, 정체불명의 자질+로 속이 누벼진 카키색의 조금 남루한 옷입니다. 처음 봤을 때도 새옷 아닌 것처럼 낡아 보였고 지금도 누구처럼 그러합니다. 오늘따라 외투라는 글자는 어떤 두 단어의 줄임말처럼 보였고 날씨가 풀려서인지 옷이 두툼해서인지 16년 후의 외투가 나름 따스하였습니다. 실은 진짜 진짜 추운 날일지도 모르는데요.

 

/2017. 1. 17.

 

+
이유는 단 하나, ‘재질’이 맞지만 굳이 ‘자질’로 썼다.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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