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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리고 虛 ◎

도서관서 시집 네 권과 그림책 하나 빌려왔다. 하지만 모자라는 눈에 보이는 시는 단 한편도 없었다. 꿈을 찍는 사진관을 생각하며 설렁설렁 그림책만 읽었다. 상상력일지 집중력일지 무엇인가 조금 부족했던 듯, 자살을 통해 오랜 소망을 찾는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생각할 것은 좀 있었다. 초저녁 산자락의 도서관을 찾았던 것은 그녀 때문,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사서는 신간을 뒤졌으나 시집을 찾지 못했고 그녀가 시집 코너에서 빈 손으로 돌아오는 사이 나는 나란히 두 권씩이나 꽂혀있는 제목을 발견하였다. 실수로 심야이동도서관을 대출등록 하지 않고 가져온 탓에 나는 도둑처럼 검색대에 잡혔고 다시 돌아가 대출 신청을 해야 했었다. 허수경의 최근 시집 때문에 갔었지만,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자주빛의 역을 꿈꾸며 펼쳤지만 허 포에지아는 만나지 못했다. 나, 그리고 아무 것도 읽어낼 수 없었던 虛 포에지아.

 

나는 중력의 무지개를 집어 들었다.
책을 펼치자 글이 57쪽까지만 있고 그 뒤로는 없었다.
끝가지 읽지 못한 책이었다.
내가 읽다 만 페이지에 아이스크림 막대가 꽂혀 있었다.
/오드리 니페네거, 심야이동도서관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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