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 ㅇㅇㅇ시인이 무대에 올라 윤동주 시를 낭송했다. 제목은…….”
(가을을 타고 흐르는 시 낭만을 깨우다, dy일보)
“민족시인 윤동주의 ‘ㅇㅇㅇㅇㅇㅇ’이라는 시가 있다.
세월의 가을이 아닌 인생의 가을을 노래한 것이어서 계절의 변곡점을 지날 때마다 생각나는 시다.”
(ㄱㄱ신문)
모친 모시고 어디 다녀오는 길이었다. 폰을 들여다보다가 무엇이 궁금했던지 어느 친구분께서 보냈다는 카톡에 대해 말씀을 하셨다. 핸들을 잡고 있던 나는 그분이 보내왔다는 윤동주의 시가 어떤 것일지 궁금해서 한번 읽어보라고 했다. 겨우 두어 줄을 읽었는데 나는 중단을 시키고 제목부터 물었다. 시작 부분만 들었을 뿐이었지만 그게 윤동주의 것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당연한 이유의 가장 큰 근거는 그의 시를 거의 다 읽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제목의 시를 본 기억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고 그게 내가 여태 알지 못한 그의 시라고 한다면 좀 떨어지는 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딘지 습작의 느낌이 풍기는. 그래서 나는 십중팔구,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말씀을 드렸고 모친도 그런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오늘 조금 자세히 찾아봤더니 역시나 그것은 윤동주의 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과 허위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상에 있는 듯, 숱한 기사와 블로그에 너무도 자연스레 윤동주의 시로 소개되고 인용되고 있었다. 이 무슨 첨단 포스트모더니즘 기법의 구현인지 기존 시인의 시와 그 시를 (윤동주의 작품으로 치부하며) 낭송회도 이루어지는 상황이었고, 이 시의 ‘진짜’ 지은이에 관한 작은 기사는 뒷전이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일부 신문의 칼럼이나 기사에서조차도 이 시를 윤동주의 작품으로 자연스레 인용하고 보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출처불명의 글들이 인터넷이나 sns를 떠돌며 지은이가 잘못 알려질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 와전이라는 것이 ‘종이신문’의 영역에서까지 검증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보다 심각한 일이다. 한때 널리 읽혀졌던 스티브 잡스의 유언이라는 글처럼 그것이 터무니없는 와전이었음에도 그것을 걸러낼 ‘필터’가 없었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 오작동은 경기에서 제주까지, 전국 팔도에 골고루 걸쳐 있었다.
게다가 이 시가 인터넷을 떠돌기 이전부터 (다른 어떤 분은 이 시를 그리도 사랑했던지) 원작자의 글을 마음대로 자기 이름으로 지면에 발표하기도 했고, 그런 이유로 해서 현재의 제목 또한 지은이의 원제와는 조금 달라져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것을 ‘윤동주의 시’로 인용하며 칼럼을 쓴 분들이나 남의 시를 자기 이름으로 발표한 분이나 상상을 초월하는 기법으로 치자면 빛나던 옛시절의 마술적 리얼리즘 작가들과 맞짱을 뜰만한 최상위 수준인 듯 싶다.
덧붙여 “이 시가 윤동주의 작품으로 둔갑한 것은 그만큼 작품이 우수하다는 증거”라는 어떤 분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지만 지은이에게는 자신의 작품에 관한 소중한 권리가 있는 만큼 그에 관한 의혹 역시 명백하게 해소되어야 할 부분이다. 이 황당한 저작권 덤태기(윤동주)와 침탈(원작자)에 관해 누가 웃고 누가 울어야 할지 조금은 헷갈리지만 말이다.
아주 가끔은 이와 같은 와전(물론 지은이에 의한 의도적인 와전)이 멋진 신세계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만 불행히도 누구나 쉽사리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서도 깊이와 진위를 헤아릴 수 없는 숱한 사연들이 자신과 당신의 모습을 전혀 다른 무엇인가로 맞바꾸며 엉터리 같은 못난 세계를 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무슨 빌어먹을 음모이론도 아닌데 진실은 저 너머(또는 이 링크 너머에~)에 있고 누군가는 자신이 결코 쓰지 않은 시의 떨떠름한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이 시가 윤동주의 작품으로 둔갑한 것은 그만큼 작품이 우수하다는 증거’라니…..말도 안되는 얘기를.
이런 일이 있다는것을 부끄러워해야 하거늘…
언제나 그렇듯 진실은 저 조그만 공간에 가려져 있어요.
그 공간을 찾아가야만 볼수 있는 그 진실은 누구에게나 보여지지 않는것이 한탄스럽습니다.
떨떠름한 주인공은…
^^
부산에 물폭탄이 떨어졌다는데.
지진에 폭우에 걱정 잘날이 없네요.
무탈하시지요?
‘우수하다는 증거’라는 주장은 지은이의 편에서 한 말이었습니다만
도리어 역효과라는 점에서 좀 그랬습니다.ㅠ.ㅠ
두 지은이(?)가 모두 슬픈 느낌인데 보는 이만 헛웃음이 나게 하는 이야기였지요.ㅎㅎ
오늘 아침엔 굉장했더랬습니다.
보기 드문 폭풍이 몰아쳐서 저도 한참 늦게 나갔습니다.
길거리는 은행알과 나뭇가지로 덮였고 근처의 가로수 한 그루는 둥치채 뽑혀나갔더군요.
은행알을 줍는 아주머니의 바쁜 손길 너머
미용실의 쇼윈도우가 산산조각으로 깨어진 채 흩어져 있었고
쪼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그것을 치우고 있는 이의 느릿한 뒷모습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