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예기치 못한 크고 작은 시련의 연속, 처음 봤을 적의 답답한 느낌 때문인지 그 영화를 다시 보고픈 생각은 별로 없었다. 한데 언제부터인가 그 답답함이 무지무지 생각이 나서 머리 속을 맴돌았다. 나 자신 시리어스 맨의 상태가 되었는가 싶었다.
스탠리 엘린의 단편에 나오는 ‘애플비’처럼 ‘질서바른 세계’를 사랑하는 평범한 물리학 교수인 래리 고프닉에게 연이은 시련이 닥친다. 테뉴어 트랙 심사를 앞두고 음해의 투서가 날아오고, 한국인 학부모는 학점 매수를 시도하고, 백수인 동생 아써는 도박과 여타의 범죄들로 골치를 썩인다. 아들은 대마초 피우기에 여념이 없고 딸은 코 수술을 원하는데 무엇보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아내가 그도 잘 아는 이와 살기 위해 이혼을 요구하며 고프닉을 모텔로 쫓아내는 대목에서였다. 레코드 회사에서는 돈을 독촉하는 연락이 쉴새없이 오고 왜 내게 이런 시련이 닥치는지 상담하고 싶은데 랍비를 만나기는 너무 어렵고, 그 와중에 안테나 고치러 옥상에 올라갔다가 나체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이웃 여인을 발견하고서는……
그다지 나쁜 짓 한 것도 없는데 ‘주인공’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시련을 당하는 래리 고프닉의 피곤한 나날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를 보일 때 갑작스레 토네이도가 불어닥치고 검진을 했던 의사로부터 급히 오라는 전갈을 받으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있을지 짐작을 할 뿐, 하지만 알 수는 없다. 고양이는 죽었거나 또는 살아 가거나.
영화 속에는 세 사람의 랍비가 등장하는데 주차장의 비유(?)를 설파하던 젊은 랍비(상좌스님)와 어떤 치과 환자의 이 안쪽에 새겨진 글자들의 비밀에 관해 들려주던 랍비 나크너(주지스님), 그리고 랍비 마르샥(조실스님)의 제퍼슨 에어플레인 이야기는 사고의 깊이와 폭의 변화를 보여주는 듯 흥미로웠다.
그리고 생각은 단출한 주석을 좋아했다는 랍비 라쉬의 경구를 인용한 영화의 첫 화면으로 돌아간다.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라.”(Receive with simplicity everything that happens to you.) 너무도 지당한 말씀인데 그 단순함을 받아들이기에 영화를 보는 이는 그 어떤 해결의 능력도 없으면서 실없이 시리어스하기만 했다. ‘멘타쿨루스’라는 이름을 지닌 아써의 복잡한 노트처럼.
“믿었던 진실이 거짓으로 드러나고 네 안의 모든 희망이 사라지면 어떻게 할까?”
이루어진 적 없는 그의 욕망이 담긴 꿈에서, 그리고 래리 고프닉이 결국 만나보지 못한 랍비 마르샥이 성인식을 치룬 그의 아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에서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노래가 어떤 이의 허공을 삐라처럼 붉게 흩날렸다.
When the truth is found to be lies
And all the hope within you dies
Then what?
Grace Slick, Marty Balin, Paul Kantner Jorma(Kaukonen)
These are the members of Airplane!
/Rabbi Marshak
/Rabbi Marshak Scene.
/Mrs. Samsky Scene에 나른하게 깔렸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