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내 가슴을 꿰뚫는 파란 눈빛도 신비다.
<파란 색의 비밀, J. 꼭도>
밤의 다이얼이 돌아갑니다. 아주 멀고 희미한 싸이렌 소리가 잡히거나 여기 저기서 밀려난 프로그램들이 재미없이 이어집니다. 지루한 나는 가만히 한 곳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여기저기 마음을 돌려봅니다. 이 세상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아주 작은 부표를 찾아 마음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희미한 별의 소리처럼 잠결에 밀려오는 파도 소리처럼 겨울 바람이 불어대는 피리 소리처럼 나를 부르고 내가 노래합니다. 관현악이 스쳐 지나가고, 유쾌한 이국의 목소리도 가끔 나옵니다. 어쩌다 본 적도 없는 옛 영화의 익숙한 곡조가 들려오면 그날 밤의 마음이 낡은 추억을 펼쳐냅니다. 점점 작은 소리, 점점 낮은 소리로 마음을 모읍니다. 간섭음들 사이로 어둔 골목길을 밝혀주는 옛친구 목소리가 들리고 당신과 나만을 이어주는 다이얼이 있습니다.
이 밤 편히 쉬고 있을 당신의 푸른 창을 흔들고 싶지 않아 소곤소곤 이야기 합니다. 바늘 끝 위에 얹혀질 듯한 희미한 접점을 따라 불러보는 깊은 노래입니다. 아침이면 당신 가슴 속에 동그라니 그 가락의 길이 새겨져 있을텝니다.
급한 아침 저어대는 당신의 찻잔 속에, 시린 바람에 감싼 귀 속에 당신의 얼어붙은 눈 속으로, 끝까지 단추 채워진 외투 속으로 모든 둥글고 따스한 곳에 언뜻 언뜻 노래가 흐를 것입니다.
/1999. 1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