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관자놀이에 무슨 일이 있었니
머리칼아 너는 무엇을 가릴 수 있니
당산나무 지나서 골목 하나 건너고 몇 걸음만 옮기면 파랑 빨강 이발소 표지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멈추어 있었어 흠집 투성이 자개무늬 둘러진 거울 앞에 앉자 나는 정물이 되어 있었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이발사는 미련없이 가위질을 시작하였고 머리칼이 듬성듬성 잘려 나갔어 뚜뚜뚜 뚜, 재빠른 가위질과 느릿한 졸음이 때맞춰 들려오는 정오 뉴스에 장단을 맞추기 시작했지
머리칼아 너는 무엇을 자를 수 있니
비누거품아 너는 무엇을 터뜨릴 수 있니
보드랍고 하얀 천 위에 번민들이 이리저리 뭉쳐지고 있었어 상고 머리의 낡고 촌스런 얼굴이 거울 대신 자리잡고 있었지 이내 몸이 움직이지 않는 한 거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정물이라는 것, 꼭꼭 새겨두고 있었어 그래, 어디까지든 재빠르게 따라오너라 더벅머리는 밤톨처럼 까칠까칠 더 이상 깎을 수도 없었어 세면대에 머리를 처박으며 이발사가 웃으며 노래했지 꿈은 어디로 갔니 양철 세면대가 초록빛 연못으로 깊어만 갔지 너는 어디에 있니 수돗물 소리와 머리 감는 손길이 이발사의 꿈 노래에 박자를 맞추기 시작하였지 숨가쁜 너의 명치에 무슨 일이 있었니 꿈아 너는 무엇을 만질 수 있니
뚜뚜뚜 뚜,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억양 하나 바뀌지 않을 듯한 정오의 뉴스, 이발소 표지가 빨강 파랑 내 마음처럼 어지러이 돌아가고 있었어 몇 걸음 건너뛰어 골목 하나 지나면 당산나무, 터벅터벅 촌스런 더벅머리가 걸어가고 있었지 꿈아 너는 무엇을 잡을 수 있니 너는 무엇을 깨울 수 있니
mister.yⓒmisterycase.com, 2000.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