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히우에서는 올림픽이 진행중이다. 소식이야 매일같이 듣지만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음악이 있는 나라의 제일 큰 도시에서 열렸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에사 히우 올림픽의 마스코트를 보게 되었다. 이름이 비니시우스였다. 비니시우스라면 나는 단 한 사람을 깊이 알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비니시우스의 곁에는 또다른 마스코트도 하나 있었다. 장애인 올림픽을 위한 것인데 그의 이름은 ‘통’이었다. 비니시우스와 통,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브라질의 시인이자 외교관, 가수, 작곡가, 그리고 영화 평론가였던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와 작곡가 안토니오 까를루스 조빙이 올림픽의 마스코트로 다시 태어난 것이었다. 비니시우스란 캐릭터는 팔과 다리를 마음대로 늘이고 체력적으로 강해질 수 있지만 그런 능력은 좋은 일에만 사용할 수 있으며, 통의 머리를 덮고 있는 변화무쌍한 잎과 열매는 장애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상지한다고 한다. 지금은 ‘비니시우스와 통’을 검색하면 온통 마스코트가 먼저 나온다.
이름으로 남아 있을 뿐, 사실 마스코트에서 그들의 음악과 사연은 전혀 느낄 수도 없다. 하지만 그 이름들이, 모습이 히우의 올림픽으로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뭉클하였다. 그리고 마스코트로 본 두 사람의 모습은 자연스레 Carta ao Tom을 생각나게 했다.
꼬무 지지아 이 뽀에따 ㅡ 이 노래에 대해 비니시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텅 빈 호텔 방에서 나는 톰을 그리워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보내지 않은 숱한 편지들처럼 그에게 편지를 쓰고자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또낑요을 불러 새로운 노랠 쓸 시간이라고 했고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멋진 보싸노바의 시대와 우리가 했던 것들을 회상했다. 그 곡의 이름은 ‘톰에게 보내는 서신 74’이다.”
1974년의 일이기도 하지만 나는 가끔 그것이 74번째란 생각도 한다. 두 사람이 “이빠니마의 소녀”를 만든 나씨멘뚜 씨우바 거리 107번지 ‘통’의 집에서 엘리제찌 까르도주를 위해 “깊은 사랑의 노래”를 쓰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다. 이 곡의 피아노 전주는 노래 가사 속에도 나오는 ‘헤덴또르(예수상)’가 있는 언덕의 이름 ㅡ “꼬르꼬바두”의 주제부를 상큼하게 차용하고 있다.
Ah que saudade…… 그들의 음악과 그들이 활동하던 시대를, 그리고 내 귀가 온통 브라질을 향해 있던 시절을 그들처럼 그리워하며 나도 편지를 쓴다. 2분 36초의 시간을 하염없이 늘여가면서.
+첫곡은 오리지널이고 두번째는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가 세상을 떠난 후 이루어진 추모 라이브 앨범에 수록된 것이다. 원곡처럼 산뜻하고 상큼하지는 않지만 그 어떤 공허감을 나는 알고 있다. (1974년 이후 조빙은 자신에게 온 편지에 답을 붙였고 그래서 Carta ao Tom / Carta do Tom으로도 불리우곤 했다.)
++비니시우스와 통. 그런데 파서의 발음으론 좀 그래서 그냥 ‘통’으로 했다. 내가 들은 바로는 ㅌ과 ㄸ의 가운데쯤, 그리고 통과 토의 가운데쯤(비음)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