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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맨 ◎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시편 22:6)

 

밤새 베란다에 비가 쏟아지네요 깨알 같은 글자들 사이로 그리움이 구비치네요 어디서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나요 애잔한 실로폰 소리 촘촘하게 이어지며 가슴을 두드리진 않았나요 한참 늦어버린 시네마 천국엔 흉칙한 얼굴 하나 가득하네요 그래요, 절대 거울을 들여놓지 말랬지요 그 얼굴 한번 보면 잊지 못한댔지요 아마도 낡고 가파른 계단 지나 잊혀진 옛 유원지 어두운 천막 속에 살던 외눈박이 새카만 새끼 염소이거나 목 없는 미녀였나봐요 튀어나온 이마 사이로 흐르는 빗물, 돌아서면 등줄기로 스며드는 한숨이네요 시편 23장이 아름답다지만 그의 몸엔 22장이 새겨져 있지요 하지만 극장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신파조로 노래하지는 말아요 마음 모두 맡긴 채 귀 기울이다 대사처럼 뻔한 말에 속을 일도 없어야죠 자책하지 말아요 그는 매순간 행복해요 삶이 꽉 차 있어요 그러니 맑은 눈에 눈물 담그지 말아요 금박글씨 초롱초롱 불을 밝힌 채 밤의 페이지가 150장을 넘길 때면 그의 창가에 아주 작은 성당 하나 종을 울릴 거예요 난쟁이 등불이 뿌연 밤길 몰래 달려 그를 어딘가로 이끌어줄 거예요

 

/2000. 5. 27.

 

 

epm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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