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만이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는 오전의 한산한 거리, 겨우 햇빛 가릴 정도의 평상에 늘상 술 드시는 아저씨가 어김없이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평소 배경처럼 앉아 있던 주인 아저씨도 쌀집 할머니도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그의 곁엔 행인인 듯한 아주머니가 등을 돌린 채 담배를 피우며 신세타령을 하고 있다. 남편도 없는데 딸이 섭섭하고 빌어먹을 담배값은 너무 비싸다. 숨막히는 열기에 내 속이 세상 같고 세상이 내 속 같은데 한숨으로 탄식으로 정처없이 떠돌며 간다. 그들이 그 자리에서 나를 따라 오고 있다. 한참을 그들과 더불어 걷다 육교 위로 올라갔다. 우산처럼 보이는 양산을 든 여인이 고개를 떨군 채 걸어가고 있다. 그녀의 머리 위로 햇살인지 빗줄기인지 모를 사선이 하염없이 내려꽂히고 있다. 육교를 내려온 그녀는 다른 길로 들어섰는데 느리고 뜨거운 바람을 타고 그들이 부유하고 있다. 길가에는 터지지 않은 폭죽이 납작하게 일그러진 채 흩어져 있었고 석달간 파지를 모았으나 할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뵐 수가 없다. 어디서 얻었는지 지난 겨울 내내 그분이 입고 있던 낡고 두껍고 하얀 미키마우스 털옷을 생각하다 책상 앞에 앉은 나는 머지 않아 파지가 될 종이에 무엇인가 쓰고 있다. 그분의 불편한 한쪽 손보다 더 불편한 것 같은 손으로. 나도 생각도 종이처럼 얄팍해지고 있다.
무언가 점점 얇아지고 얕아지고 흐려지는듯합니다.
대체 무엇일까요. 이 보이지 않는 탁하고 답답한 공기는. 제눈을 흐리고 마음도 흐리고 세상도 흐려져 가는걸까요.
우산이 양산이 되고 양산이 우산이 되는 세상인걸요.
덧없이 작렬하는 이 햇빛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요.
더우니 헛소리만 늘어갑니다.
할아버지는 안보이시나보군요. 괜찮으셔야 할텐데 말입니다.
육교 위에서 본 그 사람은 너무도 기운이 빠져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따가운 햇살 아래의 양산이 우산 같았고 혼자 비를 맞는 것 같았지요.
실은 모두가 저 자신에 관한 이야기였고요.
할아버지는 다리도 많이 불편했지만 정신도 예전에 비해 좀 안좋아 보였습니다.
사무실 근처에서 만나서 커피라도 한잔 하고 가시라니까
거기까지 어떻게 가냐고 해서 더 말을 붙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못뵌지 6개월은 된 것 같습니다.
지난 십수년 동안 그런 일은 없었거든요.
머물곳 없는 이는 갈곳도 없어..
요즘…. 좀 내심정같지 말입니다..
그래서 한하운의 <何雲> 한 줄 ㅡ
“어이없는 창공에 섬이 되고파”를 떠올리곤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