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맹점

레몬타임, 로즈마리, 라벤더… 책상 위에 나란히 허브 화분 셋을 갖다 놓았던 날엔 라벤더 언덕의 꿈을 꾸었다 살짝 손을 갖다대기만 해도 풍겨오는 향기가 상큼하기도 하였다 물과 햇살 그 어디서 그런 향이 만들어지는지 참으로 신기한 마법이었다 박테리아 하나의 조직이 웬만한 중소도시에 맞먹는다던데 그럼 이것은 얼마나 대단한 역사인가 생각날 때마다 잎을 흔들며 초록빛 인생의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갈수록 별다른 재미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냥 놔두면 아무런 향기도 나지 않는 그 화분 속에 어떤 이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누군가의 하루는 그럼 어떠한가 흔들리는 그의 마음은 또 어떠한가 잠시 비 내리다 햇살은 따갑게 쏟아져 내렸다 풀잎 하나 삐죽하니 화분을 들여다 보고 있다

 

2002. 12. 28. 미스터.리

 

+
<압점>에 대해 약간 자조적인 포즈로 붙였던 제목이어서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무치

데.호따.무치

2 thoughts to “맹점”

  1. 이작자님 글중에 화분에 관한 글이 있었는데 이 글이었는지 가물거리지만 좋은 향기같은 글이었어요.
    그냥 그 시간으로 간듯해서 좋아요.
    향기있는 글에서 향기를 맡으며…. 로즈마리를 스치며 향기를 맡는 이작자님을 상상하였더랍니다.^^

    1. 허브향은 좋았으나 이 글을 쓸 적에는 좀 서글픈 심사였던 것 같습니다.
      한때는 사무실에 허브 몇몇을 키웠더랬는데 갑자기 다시 화분을 두고 싶어지네요.
      돌아가고 싶은 만큼요. 창가에 초록빛 초록향이라도 있어야 겨우……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