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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 시간에……

<이작자 여인숙>에 썼던 마지막 글
2015. 9. 16. 13:38

(게시판 복원에 성공하여 ‘화이트룸’에 올렸던 마지막 글을 가져왔다)

 

 

이작자여인숙1

 

 

더러는 햇빛처럼
더러는 빗물처럼
그 사이 사이
그대도 있다가 없다가
그랬다

………………………………………….

놀았다
더운 물속에 쓰라린 상처처럼
바람 앞에 얼굴을 가리는 새처럼
결국은 아팠다
놀았으므로 지극히 쓰라렸다//허수경

 

 

최근에 있었던 몇몇 일은 일말의 미련도 의미가 없음을 새삼 가르쳐주었습니다. 날짜는 절로 가는 것이니 앉아서 남은 시간을 헤아리기 보다는 여기서 그만 끝을 맺고 싶어졌습니다.

……왠지 ‘안락사’의 느낌이 듭니다.ㅎㅎ 安樂, 글자 그대로의 편안하고 즐거운 느낌을 상상해봅니다.

<이작자 여인숙 1999~2015. 모두의 사랑받는 이로 태어났으나 많은 이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를 망가뜨린 끝에 고적 속에 떠나다.>

이 홈페이지가 여기 있음을 바라보며 며칠이라도 더 번민하는 것이 편치가 않아서 얼른 떠나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천리안의 서비스 종료로 이렇게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내 부족함으로 하여 오늘이 왔다는 점, 무엇보다도 분명히 말해두고 싶습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오직 내 탓입니다. 끝까지 이 고적한 공간을 찾아주시고 관심 가져주신 몇몇 분께 각별히 고마운 말씀 드립니다.

here till here is there, 혼자만의 어떤 다짐들은 가능한 한 끝까지 지속하려 했으나 여기서 멈추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망 좋은 방에 어떤 노래가 흐르거나 멈추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 속에서 그러함이 의미있는 일이겠지요.
지금, 이 순간 무엇인가 의미가 있다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아니면 아닌대로 그러하겠지요. 이 달을 끝으로 이작자 여인숙은 사라지고, 나는 오늘로 문을 닫습니다. 하지만 잊어버린다는 것은 깡그리 잃어버리거나 사라지는 것과는 좀 다른 무엇입니다. 어떤 눈먼 이가 내게 놀라운 방식으로 가르쳐준 것입니다 . 그것은 결코 지워지거나 사라지는 법이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시 한번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인사를 드립니다. 레이 브래드베리의 글에서 이 세상의 마지막 밤을 보내던 그들이 그랬듯이 여인숙의 마지막 밤에도 수돗물은 잠가주시고 가벼이 정리도 해주세요.^^ 나는 바보였고 비겁했고 모자라는 사람이었지만 빛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럼 (몇 번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완성을 하지 못한 내 시 제목처럼),

다음 이 시간에……

 

 

 

 

무치

데.호따.무치

2 thoughts to “다음 이 시간에……”

  1. 기억이 생생해요.
    벌써 일년이 되어가려 하네요.
    속절없이 흘러 어디로 가려하는지. 그냥 대책없이 휩쓸려가기만 하는것 같네요.^^
    달밝은 밤에 그대는 무엇을 생각하나요.. 이런 가사가 있다니. 이 달밝은 밤에 그냥 달구경 합니다.
    달이 밝아요.^^

    1. 많은 것들이 흔들리던 시절이었죠. 지금이라고 달라진 것도 없지만 말입니다.
      도메인 연결 문제, 게시판 재복원 등등 컴퓨터랑 씨름을 하느라
      지난 밤엔 달이 있었는지도 몰랐습니다.
      글자로 남아 있는 달빛만 뒤늦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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