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을 잃고 약을 찾다
그들은 춤추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을 축하해야 할지도 모르는 채 그들은 춤을 추었다.
ㅡ 멜랑콜리의 묘약, 레이 브래드베리
그 책은 어느 약장에 꽂혀 있었을까요. 밤 늦도록 멜랑콜리의 묘약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이 책엔 발이 달렸는지 며칠 잊고 지내면 벌써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 찾을 길이 없곤 합니다. 아니면 “마개뽑힌 가슴”에서 약이 다 달아나버린 것이었을까요.
약이 없어 약이 올랐습니다. 약이 보이질 않아 어리석게 약발을 받았습니다. 기억의 모랫벌에 새겨진 그림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나는 몰랐습니다. 밤마다 꿈마다 굉음을 울리며 나를 쓰러트리던 화룡+의 정체를 몰랐습니다.
계절을 잃어버린 장롱속의 옷에서 희미한 약냄새가 풍겨 나왔습니다. 거의 부스러질 것 같은 옛 가요책에서 약냄새가 풍겼습니다. 김수영 시집에 그어진 밑줄과 비닐 커버 사이에 끼워져 있는 이름도 모를 배우의 젊은 날 사진에서 약냄새가 풍겼습니다. 어느 밥집에서 가져온 성냥갑이나 지금은 도수가 맞지 않은 촌스런 안경, “리듬 파래이드 제8집” <헤졌을때와 만났을때>라고 적힌 낡은 ‘레코-드’의 노래보다 더한 잡음 마다에도 흐릿하니 냄새가 남아 있습니다.
읽거나 읽지 않거나 어딘가 구석에 처박혀 있으나 낡은 문고판 책 하나 없으면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매번 책을 잃어버릴 때마다 어쩌면 그 책 다시는 찾지 못하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잃어버린 것이라면 그 약 구해다 주겠노라는 말이 고맙고도 미안하였습니다. 멜랑콜리의 묘약. 백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알 것만 같은 가슴뼈 사이에 꽂혀 있는 것일까요.
어느 노곤한 잠결에 꿈결에 놓쳐버린 멜랑콜리의 묘약. 침대와 탁자 사이 보이지 않는 구석에 소리없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쏟아지는 소리를 나는 듣지 못했습니다. 캐밀리어+가 얻은 것을 나는 잃었을까요. 멜랑콜리의 묘약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는데 딸기빛 유리창+ 너머로 아득히 먼 별을 바라봅니다. 그 아련한 약냄새는 어디로부터 이 밤을 향해 쏟아지고 있을까요. 나는 약을 잃고 또 약을 찾아 기뻐합니다. 그 어리석음이 기뻐합니다.
2001. 11. 8.
+<멜랑콜리의 묘약>에 수록된 단편 이름.
+ <멜랑콜리의 묘약>의 주인공 이름.
+<멜랑콜리의 묘약>에 수록된 단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