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un에 관한 짧은 Pun
어떤 제한적인 의미에서 韻이라는 것은 일종의 고품격화된 pun이다. 많은 시인들이 제 나름대로 마음 속에 운을 띄워 보지만 그것을 제대로 부드럽게 풀어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약간의 어폐가 있다고 하더라도 韻이 좋다면 그것은 아주 멋진 표현이 되거나 적어도 무난한 흐름은 된다.
나의 경우, 시를 쓰는데 있어 (별스레 그런 걸 찾지도 않았다만) 그다지 품격이 없는데다 韻이 좋지 못하여 운보다는 내 말이 가는대로 달리고 휘파람 불며 떠돌다 되는대로 당근인양 pun을 사용했을 뿐이다. 그게 갈 곳 없는 내 글의 운명이거니 하면서…
우리말의 경우 한자어로 표현되는 단어들이 부지기수인 관계로 이래저래 동음이의어 homonym가 무진장이고 따라서 그것은 나의 나쁜 운을 위한 보고다. 때로 그것은 운을 시험하는 즉석복권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상당한 집중을 필요로 한다. 꿈 잘꾸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산신령이 나타나 한 수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다.
韻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적절한 위치에 기발한 pun이 사용된다면 약간의 논리없음은 pun에 의해 어느 정도 무마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때로 주제를 희석시키고 경박한 것으로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나는 가능한 한 그것이 Hors d’oeuvre나 일종의 양념 이상의 것이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다시 말해서 pun을 제거한 상태에서도 그 의미가 왜곡되지 않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가능한 한 주의를 기울인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천박함이 극복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스스로에 관한 부끄러움을 조금은 덜어주는 대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러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즐거움이 나만의 것이 아니길 바랄 때가 많다.
하지만 나 또한 오래도록 시를 쓰면서 行韻의 날을 항상 기다려 왔다. 내 韻을 시험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물처럼 바람처럼 또는 소월처럼 운이 흐르기를. 그래서 가끔은 운우지정의 마음을 간직한 채 뜬 구름 잡는 소릴 헤적여 본다. 구운몽의 꿈을 열어 젖힌다. “I see the sky, oh, I see the cloud, everything is clear in my heart ..”
하늘에 구름이 몇 조각인지 흐름과 멈춤,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에도 운이 있는 것인지… 산문 밖을 좀 나다녀야 운문을 열 수 있는 것인지…
그러나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韻作機처럼 잘 돌아가지 않는 나의 고물 耕韻機는 늘 삑사리만 내고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시인 사임도 韻이 나빠 사임하게 되고 “애정성”에 붙들려 가지 않았던가.
행운유수라고 어쩌다 가끔은 내게도 韻秀 좋은 날이 있어 기쁘다. 韻이 따라 준다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하루, 그런 순간을 늘 기다린다. 따라서 그런 때가 있다면 그것은 정말 운수 좋은 날이 될 것이다. Good luck!!!
나의 고물 耕韻機, 아무리 힘주어 돌려도
요란한 빈 소리에 매캐한 연기 뿐
척박한 이내 마음 언제나 발동 걸려
절로 운을 읊어 보려나.
마음 밭 갈고 닦아 구름 가듯 물 흐르듯
경운기 타고 떠나 보려나.
/2001. 3. 28.
PS.
<1984년>에서 사임의 잘못은 운을 맞추기가 너무 어려워 ‘god’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존 레논은 “God is a concept by which we measure our pain.”이라 했던가.^^;;
Pun이란… Donovan의 노랠 좀 바꾸어서 말한다면 Pun is a very magic fellow쯤 될 것이고, Beach Boys의 노래 제목을 고친다면 Pun, Pun, Pun이 surfing처럼 유쾌한 것이 될 테다.
그것은 또한 hippology여서 pun이 몰려 다니는 hippocampus는 나의 꿈을 일깨워 준다. 그리하여 포르노 왕국이 아닌 新애마 천국으로 가는 나는 hippophille이다. 그런 면에서 이작자는 여전히 餘福이 많아 여성운은 좋은 것 같은데 남성운이 별로 없는 것 아닌지 몰라. 韻도 없는 것이 말만 많은 이작자, 정말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좀 씩씩거리며 씩씩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