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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토이 인 디 애틱

노래 속의 이름은 ‘리자’였고 이야기 속의 이름은 ‘리사’였다. 그게 같은 철자의 다른 발음인지 다른 이름인지는 잘 모르지만 ‘Lisa’라는 이름을 들으면 늘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사실 그 얼굴이란 내가 그 모습을 전혀 알 수 없는 이야기 속, 또는 상상 속의 얼굴이다. 그녀는 대단한 시계 장인이 만든 ‘시계’였고 리사는 이름이었다. 할아버지가 몇시냐고 물으면 그때마다 또박또박 대답을 해주던.

어떤 청년이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으나 그녀의 ‘제작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그녀 가슴에서 박동 대신 들려오는 시계바늘 소리를 듣고 달아났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생각하면 늘 미안하였고 마치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나였던 것처럼 약간의 죄스러움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 이후에 일어날 어떤 일에 대한, 그러니까 그 이야기를 읽던 시점에서 말한다면 일종의 ‘미래의 기억’, 또는 ‘미래에 일어난(나는 이것을 과거형으로 썼다) 잘못에 관한 선험적인 죄의식’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그저 터무니없는 생각일 뿐이라면 더 합리적으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리사의 심장이 짹각대듯이 내 가슴엔 감당하지 못할 버거움이 쿵쾅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체스터튼의 이야기에서처럼 나뭇잎이 되어 숲에 묻혔고 먼지 가득한 다락방에서 삭아가는 장난감이 되었고 수많은 책이 있는 도서관에서 전혀 눈에 뜨일 없는 볼품없는 이야기책이 되었다. Sad Lisa, 하지만 슬픈 것은 리자가 아니라 와전된 한 줄처럼……

“Tell me what’s making you sad, Li?”

 

 

Sad Lisa / Marianne Faithfull

무치

데.호따.무치

2 thoughts to “어 토이 인 디 애틱”

  1. 마지막줄은 저에게 말하는것 같아 흠칫했어요. ^^
    제가 좋아하는 sad lisa. 제목 그대로 sad해요.
    시계 이야기는 무척 슬프네요.
    선험적인 죄의식. 미래는 과거일뿐이죠. 이미 일어났었던 것을 답습하는건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언제나 불안한가봅니다.

    1. 이제는 지은이도 제목도 가물가물하지만 그 느낌만은 잊혀지질 않습니다.
      달아나던 청년에 대한 느낌 말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그녀가 시계인지도 모르고
      그저 스스로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이라 달아났다면
      그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소설과 현실 사이.
      (그 무슨 우스꽝스런 후유증인지 나는 지금도 시간 물어보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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