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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spering in my ear

2009년의 마지막 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느 역에선가 황급히 일어나던 아저씨 주머니에서 열쇠가 떨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만 그것을 본 듯 싶었다. 출구를 향해 달려가던 분을 불렀으나 못들었는지 그냥 가시기에 목소리를 좀 더 올려 열쇠가 떨어진 것을 알려줬다.(이럴 경우 부르는 사람이 더 부담스럽고 무안한 느낌이 드는 건 나만 그런 것일까. 나이를 먹으면 이런 부끄러움 자체가 부끄러운 일인데도 그쪽으로는 도대체가 발전이 없는 인생이다.)

듬성듬성 자리가 빈 객차의 맞은편에는 살짝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어떤 아가씨 내지 아주머니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복장에다 70년대 단발머리 같은 촌스런 머리에 촌스런 머리핀을 아무렇게나 꽂고 있었다. 거기다 몇번씩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통에 나는 괜스레 시선을 다른데로 돌려야 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시내에서 내렸고, 자리는 점점 더 여유가 많아졌다. 어느 순간 그녀가 갑작스레 내 바로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더니 잠시 눈치를 살피다 귀에다 대고 말을 걸었다. 그녀의 표정이나 복장과는 달라 보이는 멀쩡한 목소리며 억양이었다.

당황한 탓에 애매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녀는 자리를 옮기지 않고 있다 또다른 이야기를 했다. 지하철에서 내리던 순간 유리창에 그녀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으나 그녀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는 잘 알 수 없었다.

처음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진주 쪽에서 왔는데 차에서 졸다 지갑을 잃어버렸어요. 오빠가 모텔에서 재워주면 안되나요? 갈 데가 없어 하루종일 지하철만 타고 있어요.”3분쯤 뒤에는 이렇게 말했다. “차비에 보태도록 2천원만 주시면 안되나요?”. 그게 일종의 수법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 해의 저녁은 그렇게 저물었고 열쇠를 잃어버린 어떤 고단한 삶이 한참을 내 귀속에 머물러 있었다. 귀(ear) 또는 누군가의 세월(year) 속에.

 

/2010. 1. 2. 19:28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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