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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고장

지난 여름에 이어 다시 한번 경주를 다녀왔다. 연꽃이 만개했던 연못은 가뭄 탓인지 바닥을 보였고, 새카맣게 말라버린 연밥은 고장난 전화기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느 누군가도 비슷하니 그렇게 살고 있다.

별은 그토록 낮은 곳에서 빛나고 있었던지 꿈은 나날이 터무니없이 졸아들었으나 월성과 계림의 풀밭과 숲은 계절을 느끼며 걷고 즐기기에 충분하였다.
‘덕만’의 시대는 험난하였다는데 분황사와 첨성대, 황룡사 목탑이 모두 그때 이루어졌다고 한다. 경주에서 감포로 넘어가는 구빗길은 그리 높지 않았으나 강원의 준령 사이를 달리는 것처럼 상쾌하였고 회로 유명하다는 감포 해변은 좀 허술하고 깔끔하지 못했다.

수중릉의 주인에게 역사적으로 눈에 띄는 죄과가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축생의 과보’도 마다하지 않겠노라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생각하니 묘한 동조가 일었다.

해변에는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뭔지 모를 방식으로 기도하는 무속인들도 제법 볼 수 있었다. 어떤 이는 길게 늘어뜨린 하얀 천을 몸에 감아 무엇인가를 부지런히 씻고 털어내는 시늉을 하더니 그것들을 바다를 향해 날려보내곤 했다. 아득하게 북소리도 가끔 들렸다.

어쩌면 예만자 여신을 찾는 살바도르의 해변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바다에서 죽는 것은 달콤한 일이라던 바이아의 영원한 水夫 까이미의 노래도 생각이 났다. 밤하늘 바다 위의 별은 예만자의 보석(은과 금)이라던. 때늦은 가을 바람에 나즈막한 낭산 기슭 다시 한번 걷고 싶어진다.

 

홀아비는 미녀를 꿈꾸고
도적은 보물창고를 꿈꾸는구나
어찌하면 가을 맑은 밤 꿈으로
때때로 눈을 감아
청량경에 이를거나 (일연).

 

 

/2008. 10. 30. 0:13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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