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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 의심치 않는 어떤 미래에 대한 사소한 기록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은 벚꽃나무로 무성하다. 이제는 2차선 도로를 마주하고 선 나무들이 봄날이면 터널을 이룰 정도로 자랐으니 어느 계절이나 여기 사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그런 거리다. 가을은 가을대로 단출한 운치가 있고, 봄날에는 어떤 벚꽃길보다도 소박하고 요란스럽지 않아서 좋다. 요즘 같은 계절에는 늘 “여름날의 푸른 잎새들”이란 옛 노래를 절로 떠올리게 하는 그런 길이다.

아파트의 제일 중심에는 그리 크지 않은 2층짜리 상가 건물이 있고, 그곳엔 이발소와 과일가게와 슈퍼와 치킨집, 그리고 식당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낡고 조용한 이 곳에서 유일하게 조금은 붐비는 곳이 바로 여기다. 상가라고 해도 큰 건물도 아니고 아직은 주차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는 않아서 이발하러 오는 사람들도 가끔은 상가 앞에 주차를 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중심은 아무래도 슈퍼다. 하루의 절반 가량을 보내며 먹고 쉬고 자는 이 곳에 슈퍼가 없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일년에 불과 몇 번을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꼭 필요한 곳이 바로 거기일 것이다. 하지만 말이 슈퍼지 이발용 의자가 둘 놓여 있는 이발소나 바로 곁의 과일가게의 두 배 정도 되는 점포일 뿐이다.
그 슈퍼에는 아파트 단지 아래쪽의 술집거리로 술을 배달하는데 사용하는 자전거 하나가 슈퍼가 열려 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세워져 있다.

말했다시피 차량 통행이 적어서인지 차의 통행에 큰 지장이 없는 탓인지 자전거는 길 방향으로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핸들과 바퀴의 방향이 슈퍼의 정문과 일직선으로 해서 세워져 있다. 마치 비상상황을 위해 대기중인 순찰차처럼 주인아저씨의 변함없는 머리 스타일과 그 길이처럼 365일 어느 날이나 결코 변함없이 그렇게이다.
하지만 어쩌다 운전을 하면 습관처럼 나는 움직이게 된다.

과속방지턱도 없는 그곳 ― 슈퍼 앞을 지날 적이면 어쩔 수 없이 속도를 줄이게끔 되어 있는데, 왕복 2차선의 도로에서 자전거를 피해서 가려면 당연히 맞은편 차선을 절반 가량은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다지 큰 불편도 아니고, 통행이 크게 지장을 받을 정도도 아니니까 아주 잠깐 핸들을 왼편으로 돌려주면 그만일 뿐이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그런 사소한 동작을 그곳을 지나가는 누군가가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씩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일년에 수만 번 또는 수십만 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자전거와 관련하여, 아직은 겪어보지 못한 어떤 세계에 관해 감히 말할 수 있다. 만약 부지런하고 마음좋은 주인 아저씨가 스스로 자전거를 90도 돌려서(정확한 90도는 아니어도 근사값은 되어야 한다!) 세워두는 어떤 날이 오고, 그 이후 그렇게 지속된다면 아마도 우리는 다른 이방의 사람들이 몹시 부러워하는, 또는 누구보다도 우리 스스로가 가장 그리는 같고도 전혀 다른 세상에 속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그곳으로 가기 위한 유사하거나 전혀 다른 수많은 방법들에 관해 비슷한 사소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으나 그 가운데 어떠한 것도 정확히 실행된 적은 없다.

 

/2007. 7. 20

 

 

+
이 글을 쓴 몇해 뒤 슈퍼는 다른 사람에게 인수되었다. 새로운 주인은 더 이상 자전거 배달을 하지 않게 되어서 세상을 바꿀 수많은 기회 가운데 하나는 사라져버렸다. 그런 ‘기회’는 수없이 많이 있으나 그것을 실현시키려는 사람은 드물다. 지금은 내가 다니는 육교 앞에 오토바이 한 대가 서 있는데 자전거보다 훨씬 폭력적인(?) 방식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
추신처럼 달아뒀던 오토바이는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 왜냐면 그 오토바이가 있는 쪽으로 나 있던 큰 육교 한 가지는 최근에 있었던 야구장 철거와 함께 잘려나가버렸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꿈이 사라졌지만 꿈은 너무도 많다. 그것을 깨트리는 현실이 더 많은 것이 조금 서글픈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2018. 10. 2.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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