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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사랑받은 한편

몇 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아주 긴 긴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줄엔 행복이 묻어 있었고 어떤 줄은 금세 끊어질 듯 위태롭게 떨렸습니다. 산문이 되었다가 모르는 사이 운을 맞추기도 하였습니다. 줄인다고 줄여지지도 않고 애써 늘인다고 늘여지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쓴 것도 아니고 혼자 읽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눈동자 속에 몇 개의 형용사가 있었는지 수더분한 옷과 재빠른 걸음걸이가 3/4조였는지 7/5조였는지도 잘 모르는데 어찌 제대로 이해하고 쓸 수나 있었겠나요. 누가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라고 했나요. 이별에 관해 그 무슨 공감각적 표현이 있을지, 그리움에 무엇을 보태어 ‘낯설게하기(defamiliarization/verfremdung effekt)’를 만들어내었는지요.

가끔은 두 줄씩 보기 좋은 쌍을 이루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엇박자로 어지러웠습니다. 역류라면 모를까 감정이 넘쳐나는데 그 무슨 이입이 있을 것이며, 시작도 끝도 없고 절정도 없는데 기승전결은 또 무슨 허황된 서류에 붙어 있는 이름일까요.

하지만 진짜 시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제대로 자신의 운을 맞추었겠지요. 멋진 배경 속에 14행을 넣어서 소네트라 이름 붙였겠지요. 한 줄이 되었다가 전집이 되었다가 두서없이 흩어졌고 그리고 또 흩어진 그대로 남았습니다. 이제는 잃어버린 원본이며 제대로 베껴 쓰지도 못한 마음만의 한 편입니다. 결코 제대로 옮기지 못한 한 편이 여태 마음에 그려집니다. 세상 어딘가 틀림없이 그 한 편을 위한 진짜 작가가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그 한 편을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2006. 2. 23.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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