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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등등

: 이루어질 수 없음의 이루어짐에 관하여

 

처음 기타 배울 때는 그랬다.
친구에게서 빌려온 아주 낡은 기타 교본을 열심히 뒤적이며
코드라는 것을 배웠다.
많이도 필요 없었고 누군가에게 따로 배울 일도 없었다.
왼손 검지 베베 꼬아가며 하이코드 잡으려 애쓸 필요도 없었다.
코드 딱 4개 익히고 나니 연습곡으로 수록되어 있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꽃반지 끼고 그녀와 걸어본 적 없는 길도 함께 걸었다.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박히고
아르페지오를 위한 손톱이 길게 자랐을 때
있지도 않은 사랑이 여섯 줄 위를 흐르고 또 흘렀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었다 한들
나에게서 노래가 이루어질 때 세상에 그런 노래는 다시 없었다.
기세 등등 기타 등등 대충 따라 부르면
세상에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이 다시 없었다.
C와 Am와 Dm와 G7.
도와 라와 레와 솔이 5-3-2-1-2-3의 분산화음으로 어울릴 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너무도 쉽게 이루어졌다.
따로 배울 필요도 없었던 일,
기타 줄 끊어진 채 방 한구석에 잠들어 있어도
오직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만은 너무도 틀림없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또… 기타 등등
이루어질 것이다.

 

 

/2004. 11. 5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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