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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칼크의 도시에 관한 기억

그것을 당신들은 몰랐다. 왜냐하면 살아남은 부족은 몇 세대 동안이나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고 죽어갔기 때문이다.
― 티마이오스

 

그것은 손치스라는 이름을 지닌 이집트 신관의 꿈에서 비롯되었다. 그가 사이스에서 한 신전의 관리인으로 봉직할 때 그리스의 철학자 솔론을 만나 자신이 작성한 꿈의 조서의 일부를 보여준 것이다.

나는 킬허의 고전적인 지도를 통해 그의 꿈을 다시 돌아보았고 한스 헤르비거의 논설에서 그 기억의 편린을 그렸다. 비미니 제도의 해저 사진들에 등장하는 거대한 돌벽들을 통해 상상의 자재를 마련하였고 도시의 이름으로 제목 붙여진 어느 히피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몽롱한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도시의 실체를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이그내티어스 도넬리는 장대한 저술로 대홍수 이전의 세계에 관한 희미한 기억을 복잡하게 기록하였고, 블라바트스키 부인은 아카사 기록을 통해 그 비밀을 보았다고 주장하였다. 에드가 케이시는 도시의 환영이 어느 특정한 해에 인류에게 현실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으나 그 예언은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약속이었다. 파울로 쉴리이만의 맹랑한 주장 또한 내 아련한 느낌을 의사과학과 고대사로 어지럽혔을 뿐이었다.

도시에 관한 전설은 남극에서 화성까지, 놈모와 오안네스의 신화를 통해 시리우스의 보이지 않는 반성 포 톨라까지 뻗어나갔으며 물위의 도시라 불리우는 아즈텍의 테노치티틀란 또한 오리칼크의 도시에 관한 회상에 일조를 하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최근에는 스페인의 남부에 있는 카디스 근처의 늪지대 ― 마리스마데 이노호스에서 장방형의 구조물과 그것을 둘러싼 동심원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그것은 내가 보았던 도시의 기억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알프레드 베게너에 의해 제안된 판구조론은 도시의 존재 자체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만들었으나 그것이 나의 희미한 기억을 흐트릴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매우 빈약한 증거 위에서 언제나 흔들리는 이름으로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전설에서조차 황폐해져버린 그 땅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오직 그것의 존재가 의심스러운 상태로 남아 있는 까닭이다. 그것은 찰스 햅굿 교수의 지각이동설이 도시의 존재에 관한 새로운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상관없는 일이다.

작은 바다 바깥의 장대한 바다, 작은 대륙 바깥의 진정한 대륙은 헤라클레스의 기둥 같은 것은 아무렇지 않게 넘을 수 있다. 오직 상상의 잔영만이 오늘까지 남아서 빛을 발할 뿐, 그것이 아니라면 불꽃같은 광채를 발한다는 오리칼크의 형상에 관해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하인리히 쉴리이만이 아가멤논의 것이라고 믿었던 황금 마스크는 그저 그의 바램이었을 뿐이지만 그 열망이 유구하고 방대한 유적을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오리칼크의 도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그 반대의 논리도 항상 유효하여 그것은 앞으로도 수많은 형상을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결국 오리칼크의 도시에 대한 기억이란 존재하지 않는 도시에 대한 기억과 꼭 같다.

도시를 설계했던 최초의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은 자신의 영토에서 시인을 추방하였다고 한다. 그가 ‘거주자’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2004. 6. 7. JJ.Lee ⓒ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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