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원하던 장소를 우리는 갖게 되었다. 세상에 없는 책이 없는 도서관이다. 그곳에서 절판된 책을 찾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책이라 해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고 소실된 책이나 심지어 다른 사람의 책에 이름만 올라 있는 책을 찾는 일조차도 크게 힘든 일은 아니다. 옛 알렉산드리아나 대영박물관, 혹은 의회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던 사람이 이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다면 책의 내용은 고사하고 책을 분류하는데만 평생을 바쳐도 모자랐을 만큼인 것이다. 장정이 훌륭한 책이 많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이 도서관의 책들이 세상 다른 곳의 책들과 다른 것은 별로 없다. 책의 두께나 도안, 글꼴이나 크기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였으나 모든 책에는 일정하게 비슷한 형식이 있었다. 책의 뒷표지가 일정한 규칙을 따르고 있다는 것인데 뒷면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지은이에 대한 소개, 책 내용에 대한 간결하고도 훌륭한 요약,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비평이 그것이었다. 유명 작가나 작품의 경우 수많은 소개와 요약, 그리고 해설과 비평이 존재하는 까닭에 그들만 읽는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만큼이었다. 특히나 명망높은 몇몇 작가들의 책은 여러 권에 걸쳐 책과 작자의 소개가 이어져 있거나 아니면 책 자체의 판형이 굉장이 크거나 (조금 따분한 내용의 양서일 경우) 매우 작은 글씨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곳의 사서들은 더 이상 책을 살피거나 분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방문객들은 그곳의 책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나는 어느날 도서관에 들러 오래도록 읽고 싶어 했던 <심문 審問>이라는 제목이 적힌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진실을 보았다. 책의 뒷면은 여느 책과 비슷하게 아주 작은 글씨로 지은이에 관한 소개가 있었고, 그리고 짧은 요약과 해설이 포함되어 있었다. 장정과 제본 또한 훌륭하여 오랜 세월과 풍상을 버틸 수 있어 보였는데 등표지와 그 반대편 양쪽 모두가 투명한 접착제로 잘 마무리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수천의 페이지를 포함하고 있는 단 한 장으로 이루어진 책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내 마음도 삶도 그곳에 꽂혀 있었다.
/2004. 2. 29. JJ.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