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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장소와
도저히 복구 불가능한 기억.
― 크리스티나 펠리 로시*

 

항구는 모처럼 동방을 돌아온 배의 소식으로 흥청거렸다. 나의 일터와 항구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지만 내 마음의 설레임은 배가 들어옴으로서 생긴 것임을 안다.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어도 각별한 친밀감으로 맺어진 항구의 관원은 그 배의 물건들을 면밀히 조사한 후 내가 필요한 것들을 먼저 빌려주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나는 먼 미래에 그의 직업이 어떤 것으로 불리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로 하여 나는 늘 발품을 덜고 꼭 그만큼 확장된 영토에 상상의 깃발을 꽂는 즐거움을 누리곤 한다.
그래서 나는 늘 기다려왔고 그 기다림은 파라오 네코의 명을 받아 대륙을 일주한 페니키아 함대의 모험담보다도 중요한 무엇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내게 질나쁜 파피루스와 가끔씩 애를 먹이는 필사 도구가 있음이 지금처럼 기쁠 때도 그리 많지는 않다. 전달자들 ― 반어반인의 형상을 지닌 양서류의 신화에서 깃털 달린 뱀의 전설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는 다양한 형상이 있지만 아득한 과거에서부터 전달자는 나름의 역할을 꾸준히 수행해왔다. 께짤꼬아뜰과 콘티키 비라코차가 그러하였고 헤르메스와 오안네스가 그러하였다.
나는 피곤한 줄도 모르고 틈만 생기면 세상을 베끼기에 여념이 없다. 최소의 정보가 주는 가장 훌륭한 선물은 최대의 상상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진심으로 그 ‘글자들’을 사랑한다. 심지어는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이국의 파피루스까지도 내게는 늘 신성한 무엇이었다. 그 불가해함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가. 또 해독 가능한 세계란 얼마나 협소한 것인가. 바다의 끝은 그토록 아득한 것이어서 태양을 응시하기를 좋아하던 어떤 소년*은 여전히 그 바다의 기슭을 거닐고 있을 것이다.
나는 파피루스를 이어 붙이는 동안 향긋한 풀 냄새를 상상하곤 한다. 사람들은 그것이 역하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른다. 아니, 나는 거기서 짜릿한 어떤 기운을 느낀다. 전달자들이 떠나기 전에, 더 많은 재촉을 받기 전에 잘 벼린 칼로 마무리를 해서 필사본을 제자리에 꽂고 나면 내 자신이 그 파피루스의 한 페이지로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갖곤 한다. 잊어버리는 데 사용하는 거대한 기억장치* ― 복구 불능의 기억까지 온전히 포함한 채 내가 세상에 돌려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런 모습이기를 바란다. 불완전으로 하여 그들이 전달자의 일을 계속하고 있듯 나 또한 그러할 것이다. 나 자신의 일은 점점 하찮은 것이 되어 잊혀질테지만 내가 베낄 수 있는 것은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어떤 이는 시에네의 우물에 관한 파피루스를 읽고 세상의 크기를 짐작하였고, 어떤 이는 별의 지도를 그렸다. 어떤 이는 증기기관과 자동기계의 꿈을 설계하였고 어떤 꿈은 파피루스와 더불어 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영 잊혀진 것은 아니다.
갠지즈의 모래알에서 옛 그리스 이발사의 갈대숲의 기억까지 세상의 팰림프세스트에 수많은 사연이 쓰여지고 또 읽히는 한 내가 사는 곳엔 (그곳이 어디든) 바다가 펼쳐져 있고 파로스의 등대 같은 빛이 밤새 바다를 비출 것이다. 심지어 등대가 사라져도 남아 있는 그 이름과 같은 지속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은 도서관의 명멸과는 전혀 별개이고 나는 천사들이 어떤 직업을 지녔을지 가끔 생각해본다.

 

어떤 형상으로든 세상 어디에 있든,
알렉산드리아의 충실한 관원에게.

 

2003. 11. 6.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우주와 자연에 대한 뉴턴 자신의 비유와 일화.
*유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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