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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은 보글보글

門을 암만 잡아다녀도 안 열리는 것은
안에 生活이 모자라는 까닭이다
― 家庭, 이상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가정家庭은 꾸리지 못하고 가정假定으로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기꺼이 꿈을 꾸라면, 더딘 이 밤 함께라면…… 하는 오붓하고 화기애애한 가정이지요 화기엄금의 썰렁하고도 위태로운 밤이지요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어느 작자 말과는 달리 절로 발길 닿는 곳, 문 잡아당기면 잘도 열리어 그 안에 가정이 충만하였습니다 꾸벅꾸벅 내 안에 넘쳐납니다 더러는 보셨는지 아시는지요 IF라면,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라면의 상표입니다 지겹도록 우려먹던 정겨운 라면의 이름입니다 라면은 보글보글, 낮은 소리로 끓고 있습니다 짙은 라면 냄새가 허기를 재촉하며 요동치는 밤입니다 기다리는 동안 안경엔 뽀얗게 김이 서렸습니다 이왕 내친 김인지 안경 벗어도 똑같이 뽀얗습니다 허기진 마음인지 부족한 마음엔지 내 그릇이 조금만 컸더라면 싶었습니다 힘들면 힘든 대로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열심히 면발을 뽑아봅니다 고르고 골라가며 마음 다잡아 봅니다 라면은 보글보글, 맛있게 끓고 있습니다 ― 같이 드실래요? 정말 배가 고픕니다 라면은 보글보글, 운이 너무 잘 따르는 나의 그리운 포에티카입니다

 

/2002. 9. 19.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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