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도노반을 ‘사랑한다’. ○○살 먹은 남자가 할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ㅡ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 동화같은 노랫말을 사랑하고,때로는 철없이 들리는 그 멜러디들을 사랑한다. Atlantis를 회상하는 낭랑한 목소리를 사랑하고, 어쩌다 찐득하고(?) 변태적인 듯한 노래들을 사랑한다.(진짜 이상하다… ^^;)
도노반의 노래는 몇가지 전혀 다른 유형이 있다. 집시의 애잔함을 간직한 전형적인 포크 음악도 있고, 앨리스 쿠퍼 같진 않지만 약간의 마성을 드러내는 몇몇 곡들도 있다. 간결하고 경쾌하고 발랄한 노래들이 있고,철학적인 탐색을 추구하는 심각한 노래들도 있다. 그리고 섹스에 대한 은유와 상징들이 드러나는 노래들도 있다. ‘이거 정말 심하군’하고 느낄 만큼 노골적인 대목들도 많이 있다.
이처럼 다양한 스타일과 특이한 노랫말들이 있기에 히피세대의 정신적 지주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앨런 와츠는 그의 저서 <물질과 생명>에서 도노반의 음악을 비틀즈와 함께 높이 평가하였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동화속의 왕자처럼 행복한 꿈을 꾼다. 아름다운 자연, 신비한 집시, 서러운 동요들을 그 낭랑한 목소리로 읊조려 나간다. 나무와 새와 바람과 파도와 행복이 넘치는 세상에 대한 노래들이다. 나는 내가 가진 도노반의 음반들에 수록된 곡들을 나름대로 분류해서 테잎에 담아 자주 듣는다. 그 분류법이란게 지극히 단순/무식한 것이지만 번잡한 일과를 치루면서 듣기에는 효율적인 것이었다.
며칠전 3월의 햇볕이 봄을 알리듯 따사로운 오후였다. 한산한 사무실에서 도노반의 동화같은 노래들을 듣고 있었다. 그다지 슬픈 노래들도 아니었고,예쁜 노랫말과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경쾌한 노래들이 연이어 흘러나오는어느 순간, 갑자기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너무도 간절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깨닫는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것은 ‘나도 행복해지고 싶다’는 한 순간의 너무도 간절한 바램이었다. ‘간절하다’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할 정도로 간절한 느낌…
○○살이 되도록 도대체 나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나른한 오후의 사무실에서 한 순간 모든 것이 허깨비로 변해감을 느꼈다. 철없는 목소리는 여전히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나는 그 노래속의 주인공처럼 행복하고 싶었다. 이른 출근, 이른 퇴근, 사랑하는 사람, 가족, 아이들, 가정, 따뜻한 저녁 식탁,오붓한 시간, 포근한 밤…
이 모든 것들이 (롤링 스톤스의 노래 제목을 빌리자면) “2,000 light years from me” 같은 느낌이 들면서 너무나 비참해지는 것이었다. 도노반의 그 노래들이 한 순간 너무도 역설적으로 내게 들리고 있었다. 진심으로 행복해지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행복’이라는 너무도 단순하고 평범한 말이 내 가슴을 쓰리게 하는 순간이 있으리라고는 결단코 생각한 적이 없었다. Happiness runs…
/1998. 3. 8. 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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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쯤 전에 쓴 것이다. 이 글을 썼던 그 이른 봄날에 무슨 노래를 들었는지 나는 거의 기억한다. 노래 두 곡이 흐르는 동안이었는데 한 곡은 특히나 명확히 기억하고 있다. 조만간 그 노래에 대해 무엇인가 간략한 글을 쓸 생각이다. / 2016. 7.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