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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함께한 순간들

기억을 소재로 한 최근의 영화를 봤다. 아주 대충 봐서 영화에 관해선 뭐라 말도 하지 못하겠다. 알다시피 기억이란 굉장히 불확실하고 불분명하며, 뜻밖에도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또 과거에 대한 완벽한 기록이 있다고 한들 희미한 기억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심지어 까마득히 잊어버린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느낌은 남아 있음을 나는 안다.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이 기억의 바깥에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기억 그 자체도 아니다. 터무니없는 상실이 안타깝거나 괴롭거나 견디기 힘들 때도 있지만 망각까지 포함하는 오래된 어느 순간의 느낌이나 심정은 그다지 달라지는 법이 없다. 보르헤스에게서 망각에 관한 놀라운 성찰을 배운 이래 나는 기억에 관해서, 엄밀히 말해서는 기억하지 못함에 관하여 한결 편안해졌고 모래성처럼 허물어져가는 기억에 대한 자책에 대해서도 비슷하였다. 르네 마그리트의 기억 ㅡ 눈을 감은 채 관자놀이에 피를 흘리고 있던 모습에 나를 투영시키지 않아도 될 만큼. 영화가 보여준 것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은 세세한 기억의 정밀한 총합이라기보다는 그 순간들의 느낌과 그 느낌에 대한 믿음으로 남아 있고, 그것은 좀처럼 훼손되는 법이 없다. 굳이 영화를 통해 다시 확인할 필요도 없이.

 

 


/memory 1, rene magritte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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